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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May 02.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7) 강제 다이어트


 이런 경우 흔히 결혼을 잘했다고 하더라. 나는 결혼을 잘한 것 같다. 그녀가 이토록 알뜰한지는 미처 몰랐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면 얼마나 무서운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살이 빠지고 있다.

 각자의 돈은 각자 알아서 쓰자는 주의에다가, 아끼자! 보다는 즐기자! 쪽에 가까운 나는 먹는 데에는 크게 아끼지 않으며 지내왔다. 이런 쪽으로는 그녀도 비슷해서 돈으로 서운하게 한 적은 거의 없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일단 돈을 합쳤다. 매번 더치를 하기엔 너무 불편할 것 같아서 개인용품 구매나 개인 투어를 제외한 대부분은 함께 쓴 다음에 반으로 나누기로 했다. (사실 내가 20만 원 이상 더 냈다.)
 
 문제는 우리가 가난한 장기 여행자라는 거였다. 하루에 3만 원 정도를 맥시멈으로 둬야 하는데, 숙박에서 최소 만원 빠진다고 가정하면 매 끼니를 5천 원 정도 선에서 해결해야 하고 깎을 수 있는 건 다 깎아야 했다.

 이런 사실을 뇌에 각인한 그녀는 그때부터 Quanto es?(얼마예요?) Muy caro!(너무 비싸요!)의 기계가 되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1이라도 꼭 깎아내었다.


 한 번은 볼리비아에서 식사를 하고 거스름돈 0.5 볼을 덜 받고 그냥 나왔다가 정말 죽을 뻔했다. 약 30년 전에 500원을 잃어버린 후 엄마한테 크게 혼나서 약간 강박이 생겼는데, 그때보다 더 혼난 것 같다. 왜 내가 80원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갑자기 주식이 햄버거, 피자 같은 음식이 되고, 입에 안 맞는 음식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콜라나 맥주의 힘을 빌려야 했는데, 그녀는 건강에 안 좋으니 마시지 말라며 꼭 한소리씩 했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눈치 안 보고 마시고 싶기도 하고, 내가 마시는 건데 그녀가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좀 그래서 앞으로 음료는 내 개인 돈으로 사서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잔소리가 사라졌다.


 건강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며?






 우리는 계절이 여름인 국가를 따라 여행하기 위해 남미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시계가 좋은 데다 옷이 가벼워서 짐 싸기에도 좋아서인데, 문제가 있다.


 덥다.


 하지만 그녀는 도보 30분 미만의 거리는 택시를 탈 생각이 없다. 그래서 걷는다.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 지어준 별명은 뱀파이어다. 햇빛을 극도로 싫어해서 집에서도 커튼을 치고 살길래 지어 준 별명이었다. 그런 그녀가 한낮에 거리를 걷는다. 태양을 피할 곳도 없는데 걷는다. 다리 아프다며 투덜대면서도 걷는다.

 돈이 무서운 걸까 사람이 무서운 걸까.






 요즘 쿠바에선 너무 더워서, 원래는 참아야 했던 음료를 마신다. 웬만하면 참았던 그녀도 참지 못하고 마신다. 그 대신 6천 원 정도 하는 작은 피자 한 판을 사서 나눠 먹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다이어트를 외치고 헬스장을 다녀도 안 되더니, 여행 두 달 동안 6kg이 빠졌다. 밤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결정적인 이유 같다.


 의도치 않은 곳에서 진리를 재확인했다.


 덜 먹고 더 걸으면 살 빠집니다 여러분! 살 빼고 싶으면 장기여행을 떠나세요!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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