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훈 May 04.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8) 최고의 칭찬



까사 표식이 붙여진 대문

 쿠바에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까사 빠띠꿀라르(casa particular)’라는 특별한 숙소 체계가 있다.
 일반 가정집에 투숙객을 묵게 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에어비앤비와 유사한데, 아주 큰 차이점이자 신기한 점은 미리 예약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대문에 까사 표시가 붙어있는 집을 찾아가 무작정 문을 두드리면 된다. 빈 방이 없으면 근처의 다른 집으로 가면 되는데, 사실 주인 분이 알아서 다른 집을 소개해주니 따라만 가면 된다.

 우리는 쿠바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인 뜨리니다드(Trinidad)로 가기 전에 씨엔푸에고스(Cienfuegos)라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조식을 포함한 1박 가격이 15,000원이라는 가성비 좋은 까사에서 묵게 되었다.

 쿠바 까사에서의 조식이 꽤 풍족하게 잘 나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넉넉하게 잘라진 빵과 과일, 빵에 발라먹을 버터와 꿀, 달걀 스크램블 또는 프라이, 과일주스와 커피까지!
 마침 까사의 조식에 매료되던 차에, 호스트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뜨리니다드에 있는 똑같은 조건의 까사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

 우리는 당연히 긍정의 gracias!(감사해요!)를 외쳤고, 멋진 올드카 택시를 타고(사실은 6명이 끼어 타서 조금 괴로웠다.) 한 시간 남짓을 달려 뜨리니다드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우리가 들었던 계약조건과 달랐다. 조식을 포함하지 않은 비용이 15,000원이고, 포함하면 20,000원이라는 것이었다. 미리 들었던 조건을 열심히 어필했지만, 원래 뜨리니다드는 더 비싸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녀에게 동의를 구한 후,

 “그럼 두 밤 잘 테니까 조식 포함해서 2박에 35,000원으로 해 주세요!”

하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안된다고 했다.

 나름 짠내 투어 3개월 차인 우리의 내공을 만만히 본 것 같다. 우리도 강수를 뒀다.

 “그럼 그냥 조식 없이 1박만 할게요~”

 방문을 닫으려는 찰나, 아저씨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2박에 35,000원. 그렇게 우리는 안타는 아니더라도, 호수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까사의 조식


올드카 택시






 두 번째 날, 우리는 회의 끝에 굳이 끌리지 않는 도시를 가기보다는, 뜨리니다드에서 이틀을 더 머물기로 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를 이틀 더 연장하면, 전에 할인한 대로 35,000원에 해 주지 않을까?”

 그녀가 조금 염치없다고 느꼈는지 미안한 내색을 하며 의견을 제시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빌 수도 있는 방인데 우리가 이틀을 연장하면 오히려 호스트 입장에선 환영이지!”

 나는 그 길로 호스트를 찾아갔고, 조식 포함하여 2박에 30,000원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장원급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방으로 돌아가 당당히 그녀에게 소식을 알렸다.

 여행 시작 이래 가장 밝은 얼굴을 한 그녀로부터, 그러니까 여행 약 80일 만인 오늘

“잘했어! 라이코스!!!”


 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아냈다. 여행 와서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나에게 유례없던 맥주 두 병을 허락해 주었다.

 인생의 처세술을 체득해 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어린 왕자에서 보았던 ‘길들임’이 이런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그날 밤 굳게 다짐했다.


 “나는 흥정의 신이 될 거야.”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07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