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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May 06.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9) 기름과 물


 우린 연애할 때부터 참 달랐다. 식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우린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서로가 틀린 것처럼 부단히도 부딪히고 마음 상해 왔다. 그래도 결혼까지 골인한 걸 보면 지금까진 그럭저럭 잘 해온 것 같다. 그 과정들이 결혼생활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첫째로, 우리는 옷 스타일이 맞지 않다. 그녀가 좋아하는 하늘하늘거리는 포카리스웨트 CF 찍을 것 같은 옷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그녀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옷을 못 입는다거나 그녀의 스타일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옷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걸 종종 봤으니 오히려 존중한다.) 게다가 나에게 그녀의 스타일을 강요할 권리는 없으므로, 그녀가 어떤 옷을 입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옷이나 잘 입자는 주의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자꾸 물어본다는 것이다.


 “어떤 색이 더 나아?”


 “바지가 나아? 치마가 나아?”


와 같은 질문이면 나도 성실하게 대답한다. 심지어 나의 코디 센스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워하며 적극적으로 추천해준다.

 근데   똑같은 하얀 소복 같은 원피스 세 개를 들이밀며 어떤 게 낫냐고 자꾸 묻는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시큰둥하게 ‘다 똑같아 보인다.’ 혹은 ‘모르겠다.’ 고 대답하는데, 성의가 없다며 냉전의 발단이 되곤 한다.

 나중에 그 원피스들의 차이가 뭐였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어깨의 뽕이 더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목 쪽에 주름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길이감이 좀 다르단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두 번째로, 우리는 식습관이 다르다. 건강을 생각하자면 그녀의 의견이나 습관이 대체로 옳으므로 내가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잡식동물이 풀만 먹고 산단 말인가!

  그녀는 국밥이나 곰탕 같은 대체로 맵지 않은 국물요리를 좋아한다. 전생에 주모였나. 입맛은 거의 조선시대 사람인데 왜 자꾸 외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반면, 나는 제육쌈밥이나 떡볶이 같은 매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라면인데, 그녀는 가끔 어쩔 수 없이 먹긴 하지만 평소엔 몸에 안 좋다며 극혐 한다. 오천만 라면인들에게 혼나 봐야 한다.

 그녀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를 지니고 있는데, 그런 만큼 위가 작은 건지 입이 짧다. 가끔 정말 입에 맞는 음식을 먹게 되면 위를 개방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평소엔 많이 먹지 않는다.
 사실 나도 술 마실 때 안주를 많이 먹어서(친구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대식가처럼 보이지만, 일반 성인 남성과 비교하면 소식가다. 밥 한 공기, 라면 한 봉지 이상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는 그녀가 배부르다며 먼저 수저를 놓아버리면, 나는 그때부터 상대성 돼지가 된다. 안 그래도 억울한데,
 “배 안 불러?”라고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라, 반항심으로 더 먹는다. 내가 살이 찐 이유는 그녀 때문이 분명하다.

 직업 특성상 저녁을 거르는 경우가 많고,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자정이 가깝거나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기와 함께 이 시간까지 일하고 왔다는 보상심리가 더해져 예민이 극에 달한 상태가 되면, 해결책은 치맥뿐이다.
 거실에서 야식을 먹고 있으면, 그녀가 안방 문 한켠에서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바라보듯 나를 본다. 한 번은 그 경멸의 시선이 너무 차갑게 나를 후벼 파서 울 뻔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치킨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옥주현 님이 다이어트 비법으로
 ‘어차피 내가 아는 맛이다.’라고 했다는데, 나에겐 아니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


 나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반면, 그녀는 맥주 두 캔이면 족하다. 주로 일주일 중 토요일 저녁에 데이트를 했는데, 그때가 내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사람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이었다. 가끔은 이 시한부의 소중한 시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흥청망청 놀며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지 않기에 자제하며 속으로 욕구불만의 병을 앓기도 한다. 그러면 평일에 또 먹는다. 뫼비우스의 술이라고 하던가.


 세 번째로, 우리는 생활습관이 정반대이다. 내 기준의 그녀는 조급증에다가 걱정이 태산이고, 그녀 기준의 나는 여물 먹고 잠만 자는 소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여행하는 지금도 가끔 논쟁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아침 9시까지 출근이면 나는 7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려는데, 그녀는 6시 반부터 함께 준비하기를 원한다. 자기 혼자 먼저 일어나서 준비하고 화장실도 다 쓰고 나면, 내가 일어나서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이제 보니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 가려는 큰 그림인가?)
 그런데 다른 걸 하다가 꼭 나 씻을 때 화장실을 쓰겠다고 한다.(진짜 그런가?) 그만큼 나의 준비는 더뎌진다. 나는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출근할 때가 꽤 있다.


 우리는 같은 회사를 다녔는데, 8시 20분에 보통 출발했다. 그러면 8시부터 소파에 앉아 3분 간격으로 알린다. 준비 다 해 가냐며, 몇 분 남았다며, 늦으면 안 된다며. 숨 넘어가겠다고 그만 좀 보채라고 하면, 보채는 게 아니라 그냥 미리 알려주는 거란다.


 재난 문자 전송하는 일자리를 추천해주고 싶다.

 그래도 덕분에 늦지 않게 출발한다며 자위하지만, 가장 기가 찬 일이 이때 벌어진다. 그녀가 조수석에서 화장을 시작한다. 나는 성화에 못 이겨 배 아픈 것도 참고 일단 출발하는데, 그녀는 차 안에서 화장을 시작한다.


 나를 기다리며 보챌 시간에 화장하면 되잖아? 왜 아껴뒀다가 지금 하는 건데?!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삶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나는 말뚝형이다. 주어진 현실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이며, 애써 적응했거나 가진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돈을 모아 더 좋은 차, 좋은 집을 사고 싶다. 삶은 레벨을 올리는 게임이다.


 그러나 그녀는 홍길동형이다. 직장이든 집이든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한다. 돈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삶은 여행이다.



 우리에게 진지한 고난이 찾아온다면, 아마도 마지막 다름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든다. 벌써부터 조짐이 보인다. 내 머릿속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 그녀의 머릿속은 이민이 지배하고 있다.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애써 섞이려 하지 않고 적당한 틈을 두면 오히려 평행선을 유지하며 평생 갈 수 있을까.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듯 먹는 것, 좋아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른 우리지만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좋아하는 치킨 부위가 같다. 절망적이다. 나도 날개 먹고 싶다...






*세계여행 사진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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