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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Apr 29.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6) 딩크족 선언


 글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내 지인 몇 분들도 나의 독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소재로 글을 쓰는 게 더욱 조심스럽지만 결국은 쓰게 되었다. 읽어주는 독자가 있는 글의 힘이란 나를 털어놓게 되는 이런 불가항력도 포함되지 않나 싶다.

 나는 딩크족이 되었다.






 히딩크는 알아도 딩크족이 뭔지도 모르는 나였다.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 둘이서만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는 의미인 걸 대강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어원이나 뜻은 알지 못한다.
 앞선 나의 글을 읽었더라면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올 거라 믿는다.


 그렇다. 강제로 여행을 당했듯 이번에는 강제로 대가 끊겼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결혼이 일찍 하고 싶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는데, 아이를 일찍 낳기 위해서였다. 사실은 내가 그런 아이였다. 부모님이 너무 불타오른 덕에 스물한 살에 나를 낳게 되었고, 부모님 결혼식 사진에 내가 있다. 생각해 보면 엄청 민망하셨을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결혼으로 분명 힘든 점도 많으셨겠지만, 나는 젊은 엄마와 아빠가 좋았다.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친구들 부모님과 달리 삼촌, 이모 같은 외모도 좋았고, 마인드도 확실히 개방적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운동회 같은 곳에서는 단연 빛났다. 어렸을 땐 그게 최고의 우월감이었다.

 그래서 나도 젊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내 자식을 위해.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젊은 부모가 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대학만 졸업했는데 스물일곱 살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 서른 이전에 결혼하는 남자가 많이 없는 사회 분위기까지 한몫 더해져 나는 이래저래 반 칠십의 나이가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 괜찮다. 이병헌도 원빈도 정준하도 마흔 가까운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만 살더라.


 젊은 아빠는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했는데 괜찮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딩크족을 선언했다.

 의문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난 왜 결혼을 한 것일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별하지 못해서였다. 그녀에겐 꽤 실망스러운 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든 정이든 의리든 어떤 이유가 됐든 간에 나는 이별하지 못했다. 어리석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다.


 결혼을 재고하게 하는 많은 갈림길이 있었지만 이별하는 것보단 나았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이별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녀가 안쓰러웠고 나 스스로도 겁이 났다. 모든 게 이별보단 나았다.

 그렇게 나는 딩크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세에 대한 나의 계획,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주변의 우려(내 주변엔 딩크족이 없다.) 등 많은 것들이 나를 흔들었지만 그녀의 불행보다는 나았다.


 아이는 축복이어야 한다. 아이를 낳은 후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서로에게, 특히 아이에게 죄를 짓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애써 불행을 좇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불행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살다 보면 상황이든 마음이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를 설득하거나 번복할 권리는 없다. 이미 그녀의 결혼 조건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므로 일종의 계약 위반이 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딩크족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계획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자의든 타의든 결국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책임도 나의 것이 되었으며 이미 딩크족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여행하는 삶에 조금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비록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그 신성한 과정과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위한 삶을 사는 그 거룩한 희생을 경험할 순 없지만, 그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미래도 계획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이다. 나는 세계를 여행하며 지금 이 곳, 쿠바에 있다.




 나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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