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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Apr 17.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3) 소탈한 그녀

 

 나는 남에게 보이는 면을 꽤나 중시한다. 어릴 때부터 ‘메이커’라는 것에 꽤나 집착했는데, 풍족하지 못한 가정형편과 나의 욕구가 상충하여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화장까지 하진 않지만, 외모에도 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고 특히 옷이나 신발에 관심이 많다. 나이 들면서 살이 많이 쪄서 옷으로 최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 더 신경을 쓰고 있기도 하다. 살을 빼는 게 정상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녀가 간혹 왜 보이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냐며 피곤하게 산다고 하길래 나도 내면이 더 중요함을 인정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 봤지만, 좋은 옷을 입거나 코디가 마음에 들게 되면 자신감이 붙고 어디든 가고 싶어 지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 졌다.


 반대의 경우에는 마치 피해의식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혹여나 지인을 만나기라도 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한 마리의 미어캣이 되어 피해 다녔다.


 그래서 그냥 나란 놈의 본질을 인정하고 그렇게 살기로 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허영심과 허세라며 한심해할지 모르지만, ‘내가 벌어 내 돈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반면에 그녀는 보이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허영심이 없다. 본인 말에 의하면 그렇다.

 비록 외모를 가꾸거나 예쁜 옷을 사고 입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취미는 장바구니에 수십 개씩 옷을 넣어 두는 것이지만, 그녀는 나와는 달리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와 뭐가 다른 건지 물었더니, 본인은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일 뿐 명품을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대단히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끔 선물을 해 주고 싶을 때면 그녀의 장바구니에 있는 비교적 저렴한 보세 옷들을 위주로 선물해 주었다. 그런 선물만으로도 꽤 고마워하며 잘 입고 다녔고 나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및 새해가 되어 기분 전환 겸 그녀에게 만다리나 덕 백팩을 선물했다. 혹여나 그녀가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까 조금은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가 SNS에 인증을 하며 기뻐하고 자랑했던 것을 나는 잊지 못한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예쁘다는 보세 옷 정말 많이 사 줬는데,,, 유독 그 가방이 더 ‘예뻤’나보다.


 소탈한 그녀...







 나는 5년간 3대의 자동차를 몰아서 비교적 차를 자주 바꾼 편인데, 아버지께 헐값에 매입한 첫 차와 다음 차까지는 국산차, 그리고 세 번째는 수입차였다.

 두 번째 차도 아버지가 타시던 걸 내가 산거다 보니 은색 차량이라 좀 올드해서 빨리 바꾸고 싶기도 했고,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독일차는 아직 무리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합리화하며 일본차로 바꾸게 되었다.


 타고 있는 차도 멀쩡한데 왜 굳이 차를 바꾸냐는 그녀의 질문에

 “내가 좋은 차를 타면, 그 차에서 내리는 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질 거야.”

 하고 당당히 나의 소신을 밝혔지만, 그녀는 돈 좀 아껴 쓰라며 질책할 뿐 관심 없다는 듯 별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차를 바꾼 후로 그녀는 4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장난을 나에게 하곤 했다.


 “이 차 나 줘! ㅎㅎㅎ”

 “...?”

 “장난이야~~~ ㅎㅎㅎ”


 장난도 소탈한 그녀...






 내가 독립하면서 신혼집이 될지도 모르는 전셋집을 미리 구할 때, 그녀는 넓은 집이 싫다고 했다. 집이 넓으면 청소하기도 힘들고 적적하기만 하다며 지금 자취하고 있는 원룸에서 투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깨끗하고 편하게 오피스텔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예산이 충분치 않아 걱정하던 차였는데, ‘정말 소탈하구나!’라고 감탄하며 기분 좋게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조금 외곽지역에 있고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지만, 리모델링이 되어 심플하고 깔끔한 집을 발견했다. 비록 동네도 건물도 사람도 젊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내 집이 생긴다는 자체만으로 설렜고 즐거웠다.


 처음 시작하는 집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며 그녀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입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고 했지만 뭔가 표정은 탐탁지 않아 보였다.


 뭐가 문제일까?

 

 결국 우리는 1층 현관부터 카드로 출입 가능하고 리모컨으로 전등도 끌 수 있고(난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21층 꼭대기라 광주 전경을 볼 수 있고 1층에 편의점, 카페 등이 딸려 있고 대형마트와 영화관이 근처에 있는 젊은 티 팍팍 나는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정말 욕심이 없는 그녀의 작은 바람처럼 깨끗하고 편리한 집인 건 이전 집과 같은데, 거기에다 젊은 느낌만 더해진 그런 집이었다.


 아마도 젊은 느낌이 포인트였나 보다.


 소탈한 그녀...






 그녀는 늘 결혼식이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도 너무 부끄럽고 부담스러우며, 특히 허례허식이 정말 싫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은 우리 둘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 친척, 지인들에게도 큰 행사이며 여러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는 걸 꾸준히 설득한 끝에야 인정했고, 대신 절차든 비용이든 최대한 간소하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식대가 가장 저렴한 회관부터 30,000원 언저리인 소규모 예식장들을 두어 군데 둘러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광주에서 가장 평판 좋고 비싸고 예약하기도 어려운 예식장에서 서로 축가도 불러주며 순탄하게 결혼식을 마쳤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몇몇 변수와 변심이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그녀의 소탈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트러블도 없었다.


 그냥 유독 그 예식장이, 그 드레스가, 그 한복이 ‘예뻤’나보다 할 뿐이다.


 후... 소탈한 그녀...




 앞으로 또 어떤 소탈한 모습으로 나의 인내심을 테스... 아니 성장시켜 줄까?’


 나와 정반대인 그녀와의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나는 여행에 미친 소탈한 여자와 결혼했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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