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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Apr 12.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2) 나랑 헤어질래, 나랑 살래?

 

나는 여행하려고 결혼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직장에서의 부와 명예,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걸 버리고 그녀를 택했다. 뭔가 멋지다.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 로맨티시스트라고나 할까.


 골자만큼 멋진 사람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도 평생소원이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었거나, 성격이 진취적이었거나 심지어 방랑벽까지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정반대였다.

 나는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안정지향적이었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사실 매년 두세 번씩 다녔던 해외여행도 여행 그 자체보다는 나의 과시욕과 잘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의 포커스는 늘 나의 주변에 맞춰져 있었다. 아버지께 승용차를 그리고 어머니께 가방을 사드리고 할머니께 용돈을 두둑이 드렸을 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친구나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베풀면서 행복함을 느꼈다. 나에게 남을 챙길만한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너 지금 정말 잘 살고 있어!’라고 늘 말해주었다.


 반면, 그녀의 삶의 포커스는 그녀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고, 그녀에게 여행이란 그 소중한 자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한 요소이자 삶의 지향점이었다.


 ‘내 인생은 내 것’


 당연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삶의 기준을 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만 생각하며 산다는 말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철없게 들렸다.

 나를 위한 세계여행이라니 애초에 세계여행이란 단어 자체가 내 인생에 없었고, 그런 모험을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그녀와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결정이 나에겐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나는 조기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나의 직장은 나의 노력과 능력이 곧 급여가 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나의 경력과 고객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했고, 운과 시간도 많이 필요했다.


 정말 기쁘고 뿌듯했던 일부터 화나고 자존심까지 상했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주변의 계속되는 인정과 추대 속에서 나는 언제나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고, 일종의 강박감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러한 부담까지 고스란히 안고 왔기 때문에 내가 쌓아온 것들이 더욱 커 보였고, 그래서 놓치기 싫었고 놓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여행하는 것 자체는 좋았다. 오히려 여행하며 살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고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는 생산과 소비의 어우러짐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절충안을 제시했다.


 결혼 두 달 전, 2018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6개월은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고, 그래도 신혼여행이라고 하면 회사나 고객들에게 면죄부가 좀 생길 것 같아. 그러니까 나중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한 달 다녀오는 건 어때?”

 - 한 달은 너무 짧아...


 “매년 한 나라씩 정해서 좀 길게 열흘 정도 여행하면서 사는 건 어때?”

 - 이번 여행은 갔다 오고, 앞으로 그렇게 살자...


 “(갈수록 태산?)... 그럼 일 년에 두 번은?”

 - 남미를 왔다 갔다 하기엔 비행기 값이 너무 많이 들어...


 “한 5개월만 있으면 나 승진할 텐데, 승진하고 나서 휴직하는 걸로 회사에 이야기해볼게. 내년 6-7월쯤에 같이 가는 건 어때?”

 - 짐 부피 때문에도 그렇고 남미는 여름에 가야 많은 걸 볼 수 있어. 그래서 1-2월에 가야 해... (남미와 우리나라는 계절이 반대이다.)


 “그럼 내년 가을에 결혼하고 나서 그다음 해 1-2월 중에 가는 건 어때?”

 - 결혼하고 좀 지나고 나서는 시부모님 눈치 보여서 정말 못 갈 것 같아...


 “근데 지금 장기 여행할 돈도 충분치 않잖아. 잠자리, 음식 제대로 못 챙기면 정말 힘들 텐데. 돈 더 모아서 나중에 가는 건 어때?”

 - 아니야 괜찮아, 고생도 좀 해보고 싶어...


  “(그럴 거면 군대를 가지...)”

 - 뭐라고?


 이미 마음을 굳힌 그녀에겐 그 어떤 제안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버릇처럼 지도를 보면서 꿈꿔왔던 일이라며 되려 부탁을 해 왔다.


 그럼 왜 하필 다들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남미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우리가 함께 미국에서 브라이스 캐년을 봤던 걸 떠올려 보란다. (정말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브라이스 캐년에 압도됐었다.) 진짜 ‘자연의 보고’는 남미라며 브라이스 캐년 같은 대자연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이미 확고한 그녀에겐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좀 갖기로 했다. 여전히 그녀가 이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나도 어느 하나 양보하기 싫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정리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발 누군가 명확한 답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진지하게 헤어짐을 고민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내가 정상이고 그녀가 이상한 거라고 누가 나 대신 욕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께 일렀다. 아니 말씀드렸다.


 멀쩡한 회사를 왜 그만두냐며 역정을 내진 않으실까, 너무 단호하게 이별을 권하진 않으실까 오히려 겁이 났다.

 그렇지만 용기 내어 말씀드렸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도 같아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별로 고민도 하지 않으시곤 여행 다녀와서 먹고 살 대책만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셨다.

 대신 한 가지, 갈 거면 결혼을 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분명 별 것 아닌 게 아닌 일인데 별 것 아닌 것처럼 되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혼자 써 내려가며 아파하고 때론 원망했던 이별 시나리오들이 모두 허무해졌다.


 부모님의 입장은 간단하지만 명료했다. 그저 나의 안녕이 우선이기에 그다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하셨다.

 행복?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생각해보니 좀 멋있는데? 세계여행이라니!’


 원래 사람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아님 우유부단의 극치인 나만 이런 건가요?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우리의 이별 위기는 결혼이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부정과 걱정만 늘어놓다가 하나도 멋없게 그녀와의 결혼에 골인했다.

 

 정말 죽어도 안될 것 같던 일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었다. 부정과 걱정만 늘어놓던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쿨하게 대사라도 한마디 날렸어야 했는데 말이다.


 “나랑 헤어질래, 나랑 살래?!”


 비록 소지섭은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의 남편이 되어 지금 이 곳, 남미에 와 있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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