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멈칫' 하고 있었다. 그때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통화 중인 여자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길을 물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가는 길이라면서 뒷 좌석에 타라고 했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을 발견하고 '아하' 했던 것처럼 나의 머리도 '반짝'했다.
'그래, 히치하이킹이야'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곤란했던 부분은 교통비였다. 대중교통이 체계적이지 않으니, 선택지에 아예 올려놓을 수가 없었고, 차선책으로 여행사 상품을 고려했지만 도저히 지갑을 열 수 없는 액수만 얘기했다. 택시는 말해 뭐해. 한 마디로, (내 경험엔)가난한 나라지만 자유여행자에겐 결코 저렴하지 않은 나라가 미얀마였다. 여행 경비가 많이 드는 이유는 이제 막 세계인에게 여행을 허용했고, 그러다 보니 여행자 수가 많지 않았다. 세계 관광대국 9,10위에 드는 태국에서의 물가는 그렇게미얀마에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나는 내 여행의 걸림돌 교통비를 절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기쁨을 누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오토바이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걷어 낸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순탄하게 도착했다.
근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예고 없이 나에게 구체적인 금액을 얘기하면서 그녀에게 사례금을 주라고 했다. 자기소개도 없이 훅.
'엥! 무슨 상황이지?'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을 오는 길에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의 노골적인 개입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대로 약간의 수고비를 그녀에게 건넸고, 그녀는 뜻밖의 수입에 신이 나 제 갈 길을 갔다.
무임승차를 기대한 나 빼고 공돈이 생긴 그녀나, 그녀에게 소확행을 선사한 그나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오토바이 투어, 해볼래?
나는 그와 함께 그곳에 남겨졌다. 그는 내게 투어를 제안했다. 대가는 하루 30달러. 여행사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호텔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저렴하긴 했다. 길을 가다 상의를 탈의한 아저씨가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해서 놀라며 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일이 된 오토바이 투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청년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SNS였다. 그리고 그곳엔 내가 2년 간 근무했던 K 대학교의 재학생이 있었다. K 대라는 공통분모에 호감이 생겼고 그쯤 그의 설명이 시작됐다. 투어를 시켜줬던 인연이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지속돼 가끔 페이스북을 보며 안부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함인 지 한국 대학생의 일상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지 그의 클릭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그 학생이 게스트하우스를 홍보하고 있는 영상까지 보게 됐다. 본인이 얼마나 여행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다녔는지, 그래서 여행자에게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는 지를 유창한 영어로 반짝 반짝이는 눈으로 어필하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이 친구는 미얀마에서 자기가 이렇게 영업 자료로 소개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게 된다면 좋아할까. 불쾌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제안을 받아 들여보기로 했다. 왔던 길을 걸어갈 엄두가 안 났던 것도 큰 몫을 했다.구글 지도는 아주 드물지만 가끔 뒤통수를 쳤다.
우연치곤, 그는 좋은 가이드였다
그는 노련한 가이드였다. 관광객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고 해야 할까. 가야 할 곳은 기본이고, 방문하기 좋은 타이밍까지 꿰뚫고 있었다. 또 사진 찍어 주는 스킬도 갖추고 있었다. 여행 사진 중 흡족한 것 대부분, 그가 찍어줬다. 그와 함께 여러 곳을 다녔다. 그렇게 그날의 마지막 장소 만달레이 힐에 도착했다. 이곳만 소화하면 더 바랄 게 없는 하루가 될 게 분명했다. 근데 그곳에서 나는 그를 잃어버렸다. 아니, 한 바퀴를 돌고 왔더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투어를 멈추고, 그를 찾기 시작했다. 두리번두리번 이곳저곳을 살폈고,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한마디로 애타게 그를 찾았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고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나의 불안한 마음은 심화가 됐다. 불과 3시간 전에 만난 낯선 사람, 나는 알게 모르게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구나 나는 그를 찾으며 이 낯선 감정의 출현에 놀라며 그를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그를 찾아다녔던 기억, 나는 만달레이 힐 하면 아직까지도 그때 그 막막함과 낯선 감정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지 않았기에 그가 사라질 이유가 없었는데... 그때는 어째서 그의 부재가 그토록 불안했을까?
독립적인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줄곧 내가 독립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 이 여행을 충분히 안전하게 이어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만이었다. 내가 곤란함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본 여자가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워주지 않았더라면, 혼자 여행하겠다는 날 포기하고 SNS를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하루도 나는 도움의 한가운데 있었는데, 나는 그 일이 없었더라면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길을 묻는 나에게 그냥 몇 마디 건네주면 될 일을 굳이 자신의 시간과 발품을 팔아 숙소 앞까지 안내해준 사람이 있었고,
깜박하고 잔돈을 놓고 온 걸 애써 달려와서 나에게 전해준 사람이 있었고, 바가지에 상처 받은 마음을 토로했더니 커피를 사주겠다는 호의를 베푼 사람이 있었고, 탈이 나서 고생하는 나에게 정로환을 건네주기 위해 수고해준 사람도 있었고, 좋은 투어가 있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해준 사람이 있었으며, 낯선이와 함께 하는 술 한 잔이라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도 있었고, 외로운 여행, 틈틈이 안부를 물어준 사람이 있었고, 내 주변에서 감지되는 위험을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로 주의로 알려준 사람도 있었고...
나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시시각각 받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를 찾는 일이 막막해지고 있을 때
그는 날 찾아왔다. 나는 그의 존재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조금 더 만달레이 힐을 둘러보고선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의식하지 못했던 타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면서. 라고 근사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오토바이로 귀가하는 길이 워낙 인상 깊어 좀 더 적어보기로 한다
오토바이 위에서 책을 읽는 소녀
그가 모는 오토바이 위에서 본 풍경은 이랬다. 미얀마의 도로는 도로라는 표현이 아까운 그냥 자연의 길이었다. 횡단보도니, 신호등이니 하는 인프라는 없었다. 콘크리트 깔린 길도 당연히 없었다. 그러다 보니, 칠흑 같은 저녁 시간엔 각자가 쏜 불빛에 의지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시야가 확보가 안 되니 클랙슨을 계속 울려댔다.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행여 떨어질까 사고가 나진 않을까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이드의 허리만 꼭 붙들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나와 대조적으로 아주 편안해보였다. 선량하게 생긴 시민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아이를 태우기도 하고. 연인을 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장면은 오토바이 위에서 가지런히 다리를 모으고 여성스러운 자태로 책을 읽는 교복 입은 학생이었다. 도중에 사고가 났는데, 그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지지 않고 그냥 훌훌 털고 잠깐 아픔으로 인한 인상을 쓰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그저 교통수단에 불과하다는 동남아의 상식을 눈으로 확인하며 열악한 도로 사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숙소에 도착했다.가이드로부터 No worry를 세뇌당하며.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숙소 앞에서 그는 다음 날에도 자기와 함께 다니자고 했다. 나쁘지 않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시간을 정했고 헤어졌다.
온통 까맣다
숙소로 돌아와 거울을 봤다. 맙소사.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굴뚝을 통과한 것처럼 얼굴 곳곳에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물티슈를 꺼내 닦았다. 입이 안 다물어질 만큼 까맸다. 코를 풀었다. 콧물이 검은색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사정없이 눈과 코와 입에 침투하던 모래인지 먼지인지 모를 이물질들을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썩 안 좋았다. 건강 염려증이 도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온몸이 쑤셨다. 우선 엉덩이가 아팠다, 도로가 균일하지 않은 데다 하루 종일 탔더니 어쩔 수 없었다. 팔도 아팠다. 속도를 내는 그 위험천만한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안간힘을 썼나 보다. 귀도 불편했다. 어찌나 클랙슨을 울려대는지.
그렇게 이틀을 미얀마 도로를 오토바이를 타고 누볐다
그의 말처럼 오토바이는 NO WORRY가 맞긴 하는데, 다시 타라고 하면 여전히 멈칫할 것 같다.
그래도 베스파는 갖고 싶다.
빨간색을 살까? 핑크색을 살까? 하늘색을 살까?
몇 년째 생각만 하고 있는데, 그래도 좋다.
추신.
오토바이는한국에서는 비행 청소년, 패가망신의 길, 목숨이 여러 개 있으면 타는 위험천만한 것이지만
대중교통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자동차를 구매하기엔 경제력이 뒷받침 안 돼서 대안으로 이용하는 것. 아이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출퇴근을 하며, 장을 보러 가기도 하는 일상의 교통수단 동남아인의 발이다.
그러니, 동남아를 오래 여행할 계획이라면 한국에서 주입당한 생각들에 휘둘리지 말고 오토바이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