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던 어느 날

혼자도 둘도 고충은 있다

by 안녕씨



갈레 가는 길




엘라 Ella에서 갈레 Galle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숙소 사장님께 버스 타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알려주겠다며 내가 기대하는 답변을 주지 않으셨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다시 물었지만 역시나 오른쪽, 왼쪽 이런 단어들은 들을 수 없었다. 몇 번을 더 물었을까. 사장님은 출발하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짐을 가져가셨다. 나는 사장님을 졸레졸레 따라갔다. 사장님은 가는 길 내내 좋은 후기를 남겨달라고 하셨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아예 후기를 업로드할 때까지 옆에 앉아 있다는 동남아 사장님 얘기도 들었는데, 숙소 고를 때 우리가 유심히 보는 후기는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누적되기도 한다. 버스정거장에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사장님은 거칠 것 없는 걸음걸이로 버스 안으로 돌진하셨다. 그리곤 운전석 옆 공간에 내 여행가방을 올려놓으셨다. 이어 내가 앉아 갈 자리를 확보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셨다. “꼭 좋은 후기 남겨줘.”


버스는 나의 사장님이 하차한 후에야 출발했다. 사장님은 기사로부터 그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달리던 버스가 멈췄다. 운전수를 보조하는 청년이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고 있었다. 스리랑카에는 운전수와 요금을 징수하고, 버스가 멈출 때마다 정거장을 소리치는 직원이 있다. 그는 성수를 얼굴에 묻히곤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로 돌아와선 운전수에게 담아온 성수를 전달했다. 운전수는 앞서 청년이 한 것처럼 성수를 얼굴에 묻히며 기도를 했다. 뭔가 안심이 됐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니까.




옆 자리 인연, 아나를 만나다




서너 정거장이 지났을 때, 인도 전통복을 입은 서양인 여행자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내 옆자리가 비어 있는 지를 물었다. 그렇게 독일인 아나를 만나게 됐다. 인도에서 1년 간 체류하고 있는 가운데 스리랑카로 여행 왔다고 했다. 곧 독일에서 남자 친구가 오면, 같이 인도를 여행하다가 독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한국에 대한 질문을 했다.



- 한국은 아직도 얼굴도 모르는 남자랑 결혼을 하니?

- 우리도 소개팅하고, 미팅하고, 데이팅 앱도 하고, 클럽이나 펍도 간단다


한국에도 툭툭 Tuck Tuck이 다니니?라고 묻던 스리랑카 툭툭 기사가 떠올랐다. 그만큼의 강도로 잊히지 않을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G2 중국, 문화 강국 일본에 한국이 묻히는 기분이 든다. 한국의 인지도가 내 생각보다 낮다고.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간 끝에 그녀는 갈레에서 1박을 할 계획이고, 나는 3박을 하는 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나는 숙박 앱을 통해 숙소를 예약했고, 그녀는 아직 거처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우린 꽤 우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내가 예약한 숙소로 같이 갔다. 새로운 손님의 등장으로 사장님은 방을 업그레이드해주셨다.



혼자 여행하다 둘이 되면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엘라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오후 6시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까 두 번째 끼니였다. 아나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꽤 규모가 있는 맛집이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점원 네댓 명이 한국에서라면 볼 수 없는 어딘가에 기대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같이 일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이 익숙하지 않은 건 독일인과 나뿐인 듯 싶었다.


- 너희 나라도 손님이 없을 때, 이런 분위기니?

- 아니. 어림도 없지


그곳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나는 주문한 카레를 거의 남겼다. 물어보니, 스리랑카의 음식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모처럼 그럴듯한 저녁을 먹었고, 아나는 그러지 못했다.



혼자 여행자 모드였더라면 저녁을 먹고, 바로 숙소로 돌아갔겠지만 의지할 동행자가 있었다. 그렇게 우린 둘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툭툭을 잡아서 30분 거리에 있는 재피니즈 피스 템플 Japanese Peace Temple로 향했다. 그곳에서 팔찌를 사무적으로 만들고 있는 동자승에게 팔찌를 건네받았고, 그 대가로 그가 가리키는 기부 상자에 가지고 있는 잔돈을 탈탈 털었다. 베트남 후에 Hue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Jeff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베트남에서 시작해서 가려고 한 곳 미얀마, 태국 등을 다 돌아보고,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였다. “너는 곧 템플이 지겨워질 거야.” 그리고 그의 그 말은 기정사실이 돼 버렸다.






아나의 커다란 배낭




아나의 약상자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템플을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짐을 정리하다 아나의 배낭을 보게 됐다. 비교적 짐 없이 여행 중인 나는 서양 여행자들의 커다란 배낭이 늘 궁금했다. 근데, 바로 눈 앞에 그 커다란 배낭이 있었다. 구경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우선, 침낭이 있었다. 그날 그녀는 더블베드 위에 침낭을 폈다. 그리곤 소등을 하기 위해 침낭과 일심동체가 돼 스위치로 이동했다 침대로 돌아왔다. 또 3단계로 세분화된 소화약이 담겨 있었다. 소화약을 거의 먹어본 적 없는 나로선 꽤 생소했지만 그녀는 카레 먹은 게 좀 불편하다면서 1단계 알약을 한 알 삼켰다. 비상용 담요도 가지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고 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방을 열어서 그 담요를 쓸 수 있을까. 나는 그 비상용 담요의 실제 쓸모를 떠올렸다. 그러려면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하고, 또 배낭에 비상용 담요가 있음을 표시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나는 이와 별도로 붕대 등 찰과상과 관련된 의약품이 별도의 상자에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들은 나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졌는데, 아나는 곧 인도에서 재회하게 될 남자 친구도 이 만큼의 의약품 아니 본인보다 더 다양한 컬렉션을 구비한 후 날아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빽빽했던 반나절 투어




다음 날, 우리의 하루 시작은 조식을 함께 먹는 것이었다. 조식은 조촐했다. 식빵과 버터, 잼 그리고 프라이 한 달걀이었다. 아나는 달걀 프라이를 먹는 나에게 물었다.




- 내 것도 먹을래?

- 너 달걀 못 먹어?




아나는 스리랑카에선 당분간 채식주의자로 살아갈 거라고 했다. 나도 스리랑카를 신뢰하진 않지만 아나의 불신만큼은 아니구나 싶었다. 어쨌든 공으로 생긴 달걀프라이에 소소한 행복을 누리곤 스틸드 피시 stilt fishing를 보러 갔다. 스틸트 피싱은 스리랑카에서만 볼 수 있는 어업법이다. 기다란 스틱 위에 어부가 올라가 낚싯줄을 던져 고기를 낚는 방식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식량 부족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라고 한다. 론니플래닛 스리랑카 편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대한항공 TV 광고로도 소개가 됐다.





스틸드 피시를 보러 가자는 우리에게 툭툭 기사가 제안을 해왔다. 스틸드 피싱을 보고, 거북이 가든까지 500루피에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린 그렇게 하기로 했다.




스틸드 피싱을 보러 갔다. 실제 마주한 스틸드 피싱은 괜히 론니 플랫닛 표지를 장식하는 게 아니구나 싶은 근사한 모습이었다. 그때 어부 복장의 현지인이 다가왔다. 그렇게 모래 위에 앉아서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 물고기를 잡나요?

- 몬순은 물고기를 잡는 시즌이 아니야. 물고기가 너무 작거든. 6개월은 지나야 해.

- 그럼 저 사람들은 뭐 하고 있나요?

- 막대를 고치고 있지.

- 고기를 안 잡는데, 굳이 고칠 필요가 있어요?

- 30분 후에 중국 관광객이 오기로 했거든.




실제 어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스틸트 피싱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거북이 가든이라는 곳이었다. 부상당한 거북이를 어부들이 가져오면 이곳에서 치료한 후 다시 바다로 보내준다고 했다. 외눈박이, 다리 부상,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거북이가 5-6평 남짓의 콘크리트 건물 아래, 콘크리트 수족관 안에서 치료 중이었다. 한 마디로 입장료를 내고, 볼만한 곳은 아니었는데 서양인 가족도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지막 일정은 등대였다. 그리고 등대에는 계단이 꽤 많았다.


아나는 그렇게 오전 시간을 아주 깨알 같이 소진하고, 다음 일정지로 떠났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까지 푹 잤다. 아니, 자야했다. 혼자 여행은 심심하고, 함께 하는 여행은 너무 고단하구나, 최적의 만족은 어느 지점에서 달성 가능할까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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