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하고도 부담스러운 관심

주목받고 싶은 사람 여기 모여라

by 영희

내가 근무했던 층은 주로 50-60대 여성이 근무하는 리빙관이었다. 리빙관은 주로 생활 잡화와 주방기구, 침구, 가구, 생활가전 등이 모여있는 곳으로 베테랑 여성들의 노련함과 기세가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공간이다. 타 백화점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타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동료의 이야기를 빌어보자면, 타 백화점은 다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에 내가 일했던 곳은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것은 장단점 모두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저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어떤 사람이 들고 났는지, 살림살이는 어떤지를 그 층의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고 별의별 내밀한 개인사까지 오간다. 한갓진 시간대에는 삼삼오오 모여 서로 깔깔거리며 웃고 숨죽여 속닥거리기도 하고 어느 쪽을 가리켜 화를 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매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하고 이럴 땐 이렇게 해라 말을 얹기도 한다. 실제로 백화점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컴플레인 고객을 응대하며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는데 앞 매장의 한 매니저님이 매장에 들어와 흥분한 고객을 달래 돌려보냈다.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이런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일단 알겠다 하고 매니저한테 맡기라며 관록 어린 조언을 건네고는 쿨하게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언제고 고마움을 표현해야지 마음속에 담아만 두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아있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신경전이 오가기도 한다. 백화점은 하루의 매출로 울고 웃는 곳이라 이야기한다. ‘매출이 인격이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니 더 말 붙일 것도 없겠다. 때문에 비슷하거나 같은 품목을 판매하는 매장 간에는 고객을 두고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품을 적재하는 공간에 비해 매장과 상품의 수가 많다 보니 어느 매장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이곳엔 비밀이 없다. 내가 한 말이 오늘이 채 지나기 전에 모두에게 전달된다. 내 옆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확성기를 대고 방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첫째도 말조심 둘째도 말조심이라는 표어를 절로 마음에 새기게 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보니 머리스타일을 바꾸거나 새로 산 옷을 입거나 하면 즉각적으로 이에 대한 평가가 여기저기에서 날아든다.


언젠가 당시 유행하던 히피펌으로 머리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을 때다. 긴 생머리에서 잘게 구불하게 만 머리로 스타일의 변화가 극명하게 보이기도 했다. 파마를 하고 난 후 첫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매니저님이 말했다.


“어머 파마했어? 역시 젊으니까 컬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로부터 시작한 첨언은 "이전 머리스타일도 좋았는데, 파마하니까 확 인물이 사네”, “머리숱이 많은 편이지? 역시 숱이 많은 데다가 파마까지 해놓으니 컬이 산다” 등 실시간 댓글창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애정 어린 관심과 칭찬이었으나 내심 적지 않은 부담스러움을 동반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머리를 묶고 다녔다. 그러자 “왜 머리를 묶고 다녀? 파마해서 보기 좋았는데, 풀고 다녀”라는 의견도 추가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칭찬에 둘러싸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 결국 머리를 풀기로 결심했다.


파마를 하고서 반년 간 지속된 깜찍하고도 발랄한 관심에 지쳐 머리를 쫙- 펴고 난 후 복도에서 마주친 매니저님에게 “이전 머리 예뻤는데 머리 풀었어? 그래 이 머리도 괜찮네”라는 말을 들었다. 하하.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지 않은가.


주목받고 싶은 자 있다면 백화점으로 오라. 당신에게 수많은 관심과 손길들이 이어질지니. 애정 어린 관심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올 것이다. 들려오는 말들은 다수 흘려버리고, 나도 모르는 새 이야기 전달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종종 건네어지는 따뜻함에 고마워할 줄 안다면 백화점도 살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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