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른 걸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요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고

by 영희

얼굴이 화끈거렸던 많은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있는 한 문장이 있다.


“가르치려 들지 마!”


당시 모욕감마저 느꼈던 발언이었다. ‘이해되지 않는다 하시니 설명드리는 건데, 미천한 소인이 감히 고객님을 가르치려 들다니 죄송합니다.’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당신이 생각하신 대로 미천한 월급쟁이라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고객님이 말씀하신 바 가능한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고객을 돌려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굳게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신 요구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며 상식적이지 않고,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상대방이 느끼기에도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 말고 책임자 나와!’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고객도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말을 던지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계속해서 고객과 부딪히는 내가 안타까웠던 건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본인이 타 브랜드사에서 근무할 당시 교육받았던 고객불만응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요지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여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고객의 요구가 정당한지 따지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 고객 불만사항을 대할 때 나의 기저에 깔려있었던 것은 '억울함'이라는 감정이었다. 상식적이지 않는 요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직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고객에게 강한 반감을 느꼈을뿐더러,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잘못했다 말하는 가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그러니 어떤 사안을 두고도 원칙적으로 이것이 옳은 가, 그른 가에만 초점을 맞추어 판단하다 보니 다양한 상황에 따른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컴플레인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원칙적으로 해결이 불가하다 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고객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만 남게 되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불만이 더욱 크게 증폭되어 더 큰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태도는 고객의 화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동료의 조언 이후로 다른 동료가 고객을 대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화법으로 고객을 대하는지, 어떤 말투와 표정, 제스처를 취하는지 살펴보았다. 그중 몇 가지를 적용하자 고객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 편협한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관점을 달리하니 고객의 입장에 서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방법을 찾아가다 보니 고객과 판매자 모두 납득하고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이것은 고객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 가족,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 너와 내가 더 좋은 관계(혹은 결과)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견 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우리에게 놓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태도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쌍방 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맞춰주거나 혹은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맞춰주기만 해서는 지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고, 상대방이 항상 맞춰주기만 했던 사람은 타인의 노력을 당연시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여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라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똑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관계를 쌓아나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우리에게 처한 문제를 어떻게 잘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언젠가 여느 때와 같이 컴플레인건으로 고객과 씨름하던 때였다. 어느 한쪽도 지지 않고 서로를 향해 팽팽히 말을 주고받던 중 고객이 말했다. "내가 지금 옳고 그른 걸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럼 이 지난한 대화의 목적이 뭐냐고 묻고 싶었다. 지금에 와 돌아보니 당신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다. 당연히 오역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끝으로 내달리는 동료가 썩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모른척할 수도 있었는데 살며시 다가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게 해 주고 방법을 일러준 동료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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