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어디길래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일의 영역 속에서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그 속에서 크고 작은 관계를 형성한다. 자주 오는 고객과는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화 끝에 뒤통수가 당기는 왠지 모르게 불쾌한 말을 하나둘씩 맞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별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말들에 흠뻑 젖어 근무 끝에는 너절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농담을 가장한 무례한 언어도 있다. 대게 그런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이들은 자신이 상당히 재미있는 개그를 던졌다는 생각에 잔뜩 심취해 있다. 잘못된 고양감에 강하게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상대방이 웃든 웃지 않든 간에 본인은 웃겨 죽는다. 만약 이런 유형의 사람이 어떤 무리에 속해 한꺼번에 들어닥친 상황이라면, 농담의 주체는 농담을 주고받은 사람이 아니라, 농담을 던진 무리로 바뀐다. 원치 않은 농담을 불시에 넘겨받은 상대는 무리에 속한 사람들 간의 친밀함과 유대를 끈끈히 유지시키는 부차적 요소로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간혹 그 속에 말짱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례한 농담을 남발한 사람을 대신해 “미안해요. 이 사람 말은 무시하셔도 돼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경우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배우자를 말리는 상대 배우자이거나 혹은 자녀들이다. 부모보다 훨씬 어린 어린 친구가 똑 부러지게 사리분별해 의견을 게재하고 사과를 건네는 것을 보면 ‘어른보다 낫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하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본능이었는지 대부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퇴사하기 얼마 전의 일화는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이야기해 보겠다.
때는 다른 지점으로 상품 이동 요청이 있어 물건을 포장하던 중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얼굴을 보이던 고객이 매장을 방문했다. 방문할 때마다 매장 한 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쇼핑 후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하던 사람이라 별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 고객이 앉아있곤 하던 테이블 근처에서 정신없이 상품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말을 걸어왔다.
“한창 좋은 나이에 놀러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어떡해. 남자친구 없어?”
백화점 근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나이 다음으로 남자친구 없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시작되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네 없어요”라고 말하고는 또다시 바삐 손을 놀리는데 생뚱맞게 훅 들어온 말이 가관이었다.
“혹시 이상한 놈한테 걸려서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요즘 그런 얘들이 많데, 조심해야 돼.”
무슨 말인지 파악하느라 잠시간 멍했다. 곧이어 불쾌함이 몰려왔다. “요즘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례한 언사였다.
이전에도 다른 매장 직원에 관한 얼굴평을 이렇다 저렇다 농담처럼 던지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난감한 심정을 어색한 웃음으로 때우곤 했었다. 그 당시는 그런 류의 농담이 나를 향해 날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다. 타인을 향한 무례한 발언은 언제든지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백화점에서의 일은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도 한 가지 소개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와 같은 맥락의 무례한 언어가 백화점에서도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때는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다. 당시에는 3인 혹은 4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고 코로나 발생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등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정부지침이 내려오고, 모두가 예민하게 상황을 주시하던 때라 카페에서도 테이크아웃 유무를 떠나 모두에게 일회용 잔을 제공하던 때였다. 때문에 고객응대 매뉴얼에 ‘코로나로 인해 테이크아웃 잔에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라는 멘트가 추가되었다. 카페가 오피스 상가 사이에 위치해 있어, 점심시간이면 다섯 명 혹은 열댓 명의 인원이 단체로 와서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와 같이 점심 시간대가 되어서 한 무리의 회사원이 주문을 해왔다. 코로나로 테이크아웃잔에 드리려는데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는데, 무리 중 하나가 “안 괜찮다고 하면 어쩔 건데요? 하하하 할인이라도 해주시게요? 하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함께 온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엄청나게 재미있는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양 웃어댔다. 말 그대로 *그사세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농담이라는 착각(혹은 자기 최면) 속에 상대방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무안 주는 것이 개그라고 생각하는 심각한 자기 오류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다. 농담이라는 것은 던지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느 한 사람도 불쾌하거나 기분이 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들을 다년간 겪으면서 생긴 대처방법이 있다.
라고 되묻는 거다. 정말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고, 농담을 가장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드려고 했다면 당신이 얼마나 무례한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이들이게 묻는다. “농담하시는 거죠?”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의 줄임말로 2008년도 방영된 드라마의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해당 드라마는 방송국에 종사하는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일반인이 경험하기 힘든 '방송국'이라는 또 다른 세계 안에서 사랑과 동료애 등 인간사를 풀어나간다. 드라마 방영 이후 방송국처럼 특정 집단 안에서만 이해되고 공유되는 생각, 감정, 문화, 생활상 등을 가리켜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