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나 분리하기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일수록 나와 분리해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에 동화되어 나와 동일 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말로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인 경우 더욱 강력해진다. 나와 가까운 친구나 동료가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전달하는 경우, 편향된 의견만을 듣고서 똑같이 부정적으로 결론 내리기 쉽다. 때문에 이를 경계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나를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때는 매장에 새로운 인력이 충원된 때였다. 기존 매장 근무자의 성향과는 다르게 활발하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성격을 가진 동료가 새로 들어왔다. 사교적인 데다가 본인이 만든 음식을 나누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어떤 성격은 장점과 단점 모두를 갖기 마련이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로 나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이 이쪽저쪽에서 시작된 신입사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공유되고 확산되었다.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은 있지만 아주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던 부분도 크게 부풀려져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다. '나랑 성향은 맞지 않지만, 같이 일하기에 문제는 없는 사람'에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달리 평가되었다.
상사는 종종 “내가 없을 땐 OO씨가 일 시켜”, 혹은 “내가 없을 땐 OO씨가 잘못한 게 있으면 혼내.”라고 말했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신입이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나에게 “OO씨 D 보고 하지 말라 그래.”라고도 이야기했다. 당시 상사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교롭게도 나와 신입이 오픈과 마감을 함께하는 일정이 다수 포함된 스케줄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신입 교육도 많은 비중을 도맡게 되었다. 상사는 “OO씨 D한테 아직 이거 안 알려줬어?”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신입 사원이 입사한 후 처음 한두 달간은 혼자서 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여러 부담과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말씨름이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종종 오픈 전 매장으로 상품이 배송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오전 중에 상품을 정리하는 것이 매장 내 규칙이었다. 더군다나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공지대로 상품에 문제가 없는지 검수까지 해야 됐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조급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출근을 하고 보니 신입이 해당 공지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품 정리를 하고 있어, 처음부터 다시 확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후 공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오후까지 내내 이어진 신경전은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싸움에 이르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지금에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도하게 상사의 생각과 감정을 나에게 이입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신입에 대한 상사의 부정적 평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내가 나서서 신입을 교육하고 매장의 상황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깊게 매몰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뭐에 씐 것 마냥 그랬다. 평소에 상사가 수시로 내뱉었던 부정적인 감정과 불만들에 깊게 동화되어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상사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에 휩싸여 오지랖을 부려댔다. 매장의 책임자는 매니저이고 직원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몫도 그에게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당시 매장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과 근무하는 것은 업무적 부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돌아가며 동료들이 신입과 함께 일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와 신입이 맞물려 돌아가는 스케줄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것을 체크하고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이 과중되지 않게 인원을 배치하는 것도 매니저의 역할이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스케줄을 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에 대해서 어려움을 공유하고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던 것 같다.
후에 신입과 나와의 다툼을 알게 된 매니저는 해당 사건을 ‘나이가 어린 기존 멤버와 그보다 나이 많은 신입 멤버 간의 주도권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갈등이 일어날만한 요소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고는 문제가 발생하자 본인은 쏙 빼고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는 무책임한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신입 교육을 암묵적으로 직원에게 맡기고 나 몰라라 하였으며, 당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을 때 본인이 직접 나서 말하지 않고 직원의 입을 빌려 지적하게 한 것, 업무적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스케줄을 짜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의아하다.
본인은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 시켰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맞다. 당신에게 과하게 이입하여 오버한 내 잘못이다.
만약 지금 일터에서 나의 직급에서 주어지는 것보다 과한 책임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혹시 지금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을 해내려 하고 있나요? 그것은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당신 상사의 몫입니다. 오버해서 잘 해내려고 하다가는 되려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 쉽고, 최악의 경우에는 실패의 원인을 당신에게서 찾는 상사에게 뒤통수를 맞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상사에게 과하게 이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나의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상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후에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알고도 해결하지 못한 상사에게 책임이 있으니까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상사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유니콘 같은 존재입니다. 심지어는 알고도 모른 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