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사람
결국 한바탕 싸움의 끝에 신입은 퇴사를 선언했다. 대외적으로는 건강상 문제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매니저의 거듭된 물음에 나와의 다툼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갔던 언성 끝에 “그럼 내가 그만 두면 되죠”라고 이야기했으니 이번 일이 계기가 되었음은 틀림없었다. ‘나 때문에 그만뒀다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미칠 것 같던 시간들이었다. 비루한 항변을 늘어놓자면 신입은 다른 곳보다 적은 월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어쨌거나 나와의 다툼이 이직 결심에 불씨를 당겨준 것은 맞는 듯했다. 타인의 퇴직 결정 이유 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나의 잘못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었다.
한 달여간의 인원 공백기를 지나고 또 다른 신입이 들어왔다. 이전의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이 신입, 심상찮다. 자연스럽게 매장에 녹아들더니 어느새 조직 내에서 본인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경직되었던 매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업무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유연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상황이 심각하게 불거지지 않았고 직원들도 여유를 갖고 대처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과 몇 가지 일들을 함께 겪으면서 ‘이런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했구나’라고 깨달았다.
이제부터 매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대단한 신입을 *‘메기’라고 명명하겠다. 메기가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범인 찾기'의 중단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시즌 상품을 포장해 각기 다른 업체로 보낸 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트리에 붙은 오너먼트 없이 트리만 회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트리는 고객이 상품 불량을 사유로 교환을 요청해 매장으로 반품된 상품이었다. 트리 본체와 트리에 걸치는 오너먼트는 따로 포장되어 한 박스에 들어가도록 되어있는데, 오너먼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늘 그랬듯 범인 찾기가 시작되었다. 매니저는 누가 해당 업체의 상품을 포장하였는지, 누가 해당 고객에게 상품을 받았는지, 고객이 상품을 반품하러 왔을 때 왜 상품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를 추궁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고객에게 상품을 돌려받은 사람은 메기였는데 그가 했던 발언이 그야말로 (긍정적으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매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범인 찾기에 급급했던 흐름을 단박에 바꿔놓은 발언이었다. 메기의 말에 매니저는 말문이 막혔던지 범인 찾기를 중단했다.
메기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물론 본인이 한 실수에 대한 면피성 발언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하지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주체를 ‘내’가 아닌 ‘우리’로 명명함으로써 해당 문제에 대한 책임이 특정 범인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정의 내린 것이다. 고객이 상품을 가져왔을 때 구성품이 모두 들어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당사자뿐 아니라 상품을 업체로 회수 보내기 전에 검수할 것을 지시하지 않은 매니저도, 점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범인 찾기를 중단하자, 다음 스텝인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던 상사들에게 환멸감을 느껴왔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폭탄 돌리기처럼 나에게 떠넘겨진 책임을 돌리려 함께 범인 찾기에 동참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했다.
메기의 등장으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메기: 어류 중 하나로 주로 강이나 호수에 서식한다. 강에 메기가 나타나면 개구리 등 생물이 메기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물이 고여있는 현상을 해소한다. 이와 같이 정체되어 있는 현상을 해소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을 메기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2021년부터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에서 출연자 간에 형성되었던 관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이끌어내기 위해 프로그램 중반에 투입한 출연자를 '메기'라 명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