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부터 오빠에 의한 성폭력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진짜 고통은 지난번 글에서 말했듯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오빠가 설마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지면서 제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죽지 않기 위해 잡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가족이 제게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사람을 믿는 마음이 사라져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습니다. 사람이 무섭고 싫었습니다. 그때 제게 남은 단 하나는 바로 책이었습니다.
너무 괴로울 때 좋아하는 책을 꾹꾹 눌러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책을 옆에 두고 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세상에서 나만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혹시 그런 나의 동지가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혹시나 그런 책이 있을까 열심히 뒤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을 찾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십대들의 쪽지’라는 잡지를 모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십대들의 쪽지’는 말그대로 10대들의 고민이나 이야기들을 기록한 쪽지형의 잡지였습니다.
‘어쩌면 여기는 있을 수도 있겠구나!’
저는 도서관에 앉아서 십대들의 쪽지 모음집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한 세 권쯤 읽었을 때 저는 드디어 저의 동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빠가 자꾸 저를 만져서 무서워요. - 부산에 사는 소녀가’
라는 고민을 쓴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고민에 쪽지지기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저와 같은 동료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저는 무척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기뻤고 또한명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어쨌든 저는 무엇이든 문제가 있으면 책부터 찾아보는 성격이라 그뒤로도 쭈욱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오는 책이 혹시 있을까? 계속 찾아보았습니다. 아직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어서 책에서 동료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쯤 텐도 아라타가 지은 <영원의 아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에는 아빠에 의해 친족성폭력을 당한 여자아이가 나왔습니다.
‘아 또 여기도 있었구나. 나의 친구야.’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으로 아동학대가 얼마나 사람들 피폐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드는지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동 병원에서 만난 세 명의 같은 아동 학대 피해 아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을 보고 나도 언젠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희망어린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견한 <소생하는 영혼>은 저와 비슷하게 친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일본 여성 호즈미 준의 책으로 피해과정과 치유의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어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많이 울었고 어떻게 나를 치유해야 할지 힌트를 많이 받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한국에도 자조모임이 있을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저는 ‘생존자’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제 피해자가 아닌 그런 일을 겪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되어 구하기는 힘듭니다.
그뒤에 또 발견한 책은 <아주 특별한 용기>로 아동 성폭력, 친족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책입니다. 굉장히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잘 안 나는 책이지만 치유의 과정에 대해 구체적이고 차근차근 나와 있고 저와 같은 생존자들의 사례가 많이 나와서 공감도 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제가 총책임을 맡아서 만들었던 책으로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입니다. 이 책은 친족성폭력 열두명의 수기집으로 다양한 가해자와 생존자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을 만들고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나왔다고 감격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밖에도 목사인 아빠의 성폭력을 겪은 생존자가 쓴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와 아동성폭력 생존자의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기 힘든 분들은 제가 소개한 책들 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을 읽어보면서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으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