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는 길 중심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회사까지의 거리는 15분으로 꽤나 애매한 거리인데 그 어떤 교통수단도 없다. 애매한 거리인 만큼 아-무 것도 없다. 선택지 없이 묵묵히 걸어야 하는 상황이 이제 어언 7년 째다.
여름에는 손선풍기를 꼭 챙겨서 출근길에 작은 위로(?)를 삼아 미약하지만 꽤나 힘이 되는 바람을 쐬면서 가지만, 안 챙긴 날에는 햇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묵묵히 걸어간다. '그래, 나를 구워삶아라'는 생각으로 더위에 초탈할 때 즈음 회사에 도착한다.
겨울이 되면 내 손과 발이 이렇게 차가운지 새삼 느낀다. 회사에 도착하면 발이 꽁꽁 얼어 있다. 갑자기 외부 미팅이 잡힐 수 있으니 뾰족구두를 또각또각 신고 온 탓에 얼음처럼 얼어버린다. 한편에 놓아둔 작은 전기난로에 발을 대고 있자면 발이 녹으면서 발이 따끔따끔한데, 녹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꽤나 기분이 좋다. 이내 발이 녹으면 간사하게도 언제 고통스러워했냐는 듯 앞이 뚫린 슬리퍼를 신고 뽈뽈 아메리카노를 가지러 사내 카페로 간다. (이런 나를 보고 남자 친구는 변태 같단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업무를 시작할 때 즈음이면, 출근길에 보았던 아련한 장갑 하나가 자꾸 마음에 거슬린다. 주인을 잃고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다. 겨울이 되면 꼭 하나씩 떨어져 있는 장갑이 가끔 보이곤 하는데, 그렇게 아련할 수가 없다. '주인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마치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엄마 말마따나 '잃어버리기 선수'인지라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사용한 겨울이 지나면 뿌듯하다. 이번 겨울 장갑은 꽤나 험난했다. 늦잠을 잔 탓에 고향에 내려가는 버스를 놓치겠다 싶어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장갑이 없다. 혹여나 택시에 장갑을 떨궜을까 택시기사님에게 전화해서 택시 안을 뒤졌는데 역시나 없다. '내가 그렇지 뭐. 또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버스를 타러 돌아가는 길에 자기 갈 길 가는 차들에 무참히 밟히고 있는 장갑을 발견하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냉큼 주웠다. 버스는 놓쳤지만.
험난한 여정을 겪은 이번 겨울 내 장갑처럼, 길가에 주인 없이 떨어져 있는 장갑을 보면 꼭 지나치기 전까지 물끄러미 보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 장갑의 주인은 누구일까. 장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 순간 얼마나 당황할까. 저 장갑은 어떤 추억이 담겨 있을까. 나머지 한 장갑은 또 쓸모없어지겠지. 주인은 지금 걸어가면서 장갑 하나를 잃어버린 걸 알고 있을까.'
꼭 한 켤레여야 하는 장갑을 아무 생각 없이 길가에서 빼고는 이내 잃어버린다. 심지어 떨어지는 느낌조차 없다. 만취가 되어서 잃어버리면 억울하지도 않겠다, 꼭 제정신에 스르륵 장갑 하나를 길가에 의도와는 다르게 버리곤 한다. 물끄러미 장갑을 보다가 이내 지나치면서 생각과 생각들이 서로 물고 물면서 어디론가 향한다. '나라는 사람을 저 장갑들처럼 어딘가에 떨구어 놓진 않았을까.'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2018년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나의 삶'이 이야기하는 바가 많아졌기도 하겠다. 그만큼 나 자신을 돌이켜보려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온전히 살고 있는 이 삶이 즐거워지려면 어떤 것들이 동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일 때문에 바쁘게 살아왔던 나, 남들을 위해 살아왔던 나보다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에 관하여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길가에 떨어져 있던 장갑처럼 스르르 떨어져 버린 나를 다시 주워보거나 새롭게 정비하고는 한다.
어르신들이 말하는 '너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도 허튼 말은 아니다. 취업문제, 육아문제 등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들은, 어르신들이 겪은 사회보다 조금은 각박할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참 좋은 시대'에서는 내가 무언가 얻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바로 얻을 수 있다. 핸드폰을 통해서.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은 정보를 그 누군가가(기업이 또는 친구) 보내주기도 한다. 핸드폰을 통해서.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수업을 온라인에서 직접 찾아 방문해도 되고,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게다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해졌다. 소셜미디어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나를 보여줄 수 있고 남이 표현한 글들과 사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신이 나의 브런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정보와 거짓 감정이 파도치는 이 사회의 바다에서 나라는 존재는 더 뚝심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마치 저 길가에 아무도 모르게 떨어져 있는 장갑처럼 스르륵 어디에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자아를 돌이켜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조금은 인정하기로 한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려고 하나 이내 맥시멀리즘이 되어 '혼란 속의 질서'를 만드는, 꼭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온 날에는 콜라를 쏟거나 음식이 튀어서 빨래를 오늘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짓는 나를 어찌하겠는가.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지금의 나를 아직까지도 부정하고 탓하는 나보다는, 인정하고 더 나아가려는 내가 나답지 않겠는가.
그렇게 또 오늘은 장갑을 떨어뜨리지 말아야지 라는 조그만 긴장감을 가지고 출근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