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는 길 중심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어느 순간 제 3자 혹은 타인이 되는 순간이 있다. 마치 내가 이 대화 속에 있는 주인공들에서 벗어나 관람자의 입장으로 보게 되는 경우. 그 입장에서 나의 사람들을 보자면 그들의 입과 눈이 클로즈업 되면서 대화를 꾸준히 지켜보게 된다.
"너 Arctic Monkeys 알아? 진짜 예전에 들어봤는데 요새 또 들으니 좋더라."
"난 목적성 없는 영화는 정말 별로야. 왜 그런거 있잖아, 그냥 웃으라고 만든 영화."
시시콜콜한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의 눈은 반짝인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진다. 마치 내 물건이 가장 좋다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닮아있다. 자아-, 나는 무얼 좋아하니?
나는 최근 Parcels라는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어. 디스코 소울이 충만한 일렉트로 팝을 하는 밴드인데 음악을 들으면 그 비트가 좋아서 들썩들썩하게 돼.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는데 쌀국수에 고수를 한 움큼 넣어 먹는걸 좋아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쌀국수 집은 이태원동 언덕에 있어. 나는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를 좋아해. 연애를 판타지처럼 그리지 않고 연애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그려주어서 좋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화면 전환도 신선해. 난 요가를 좋아해. 그 중에서도 빈야사.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수련의 시간이 좋아.
그리고 너도 좋아.
나는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한다.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무엇이었을까. 내 주변 사람들? 미디어? 그리고 영향을 받은 나는 취향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정확히 '나'를 그려내고 있는걸까? 그리고 기초적인 생각; 나의 취향을 나는 정확히 나열할 수 있는가.
스펀지처럼 다른 사람의 취향을 빨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는 '취향에는 넓은 그릇을 가진' 나는 20대 초반엔 '취향'이라는 것에 혼란이 생겼다. 내 마음이 좋아서 이 취향을 받아들인 것일까 아님 택배처럼 턱 하고 들어 온 이 취향을 좋아해야만 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겠지라는 안도감에서일까 라는 생각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좋아하지 않는 것임에도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었고, 그리곤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나의 비밀스러운 취향을 오픈하곤 했었다. 매니악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2014년이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지산 락 페스티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를 소환하려 했지만 (아무도 그 밴드를 모르는 이유로...) 결국 혼자 그 많은 인파에 휩쓸리면서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한 자리에서 물로 목만 축이며 광적으로 놀았던 기억도 있다.
30대인 지금, 직업이 복병이 되기도 한다. 마케터는 트렌드에 빠삭해야 하기 때문에 취향과는 다른 분야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객관적인 마인드로 브랜드와 어울리는 트렌드와 퍼즐을 맞추는 작업을 할 때면 꽤나 괴롭다. 취향이 뚜렷해지니 이게 또 머리 아프다. (별게 다 아프다.)
다만, 혼란의 시대(?)를 겪은 20대 그리고 여전히 slightly 겪고 있는 지금, 그 혼란을 고민했던 나날들이 고맙다. 시간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것들을 수렴하는 그 순간에 그 마음 속 그릇을 향한 '취향의 깔대기'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취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잘 흡수할 수 있는 깔대기. 깔대기로 완성한 나의 완벽한 취향에서는 이제, 깊이를 추구하며 즐겁게 즐긴다. 나의 취향을 향유하며 그 속에서 나를 완성한다. '아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였어.'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대로. 다만 나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방향대로. 그렇게 나만의 취향을 완성하고 향유하면 되는 것이다. 헤매고 있다면 맘껏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