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부합하는 삶

2. 꽤나 남을 위해 살아왔다

by JIHYE

최근 이곳저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면접 예상 질문들을 미리 생각하고 어떤 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나의 강점, 나의 단점. 내가 왜 이 면접을 보러 왔는지. 다양한 질문들을 준비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지혜 씨를 어떤 사람이라고 하나요?


라는 질문을 어느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님에게 받았다. 꽤나 예상했던 질문인데도 머릿속으로 대답을 미뤄왔던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라도 지혜에게 맡기면 답이 나와.'라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는 디렉터님은,


정말 좋은 장점인데...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단점은요?


라는 질문에 '그 책임감 때문에 저 스스로를 못 살게 구는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그 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스스로가 잘 터득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면접이 끝나고 난 후 탈곡기에 탈탈 털린 잡곡처럼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있는 짐을 너 스스로 다 짊어진 것처럼 살잖아.'


면접이 끝나고 난 다음 날, 내 멘토님과 커피 타임. 저 체리는 내가 다 먹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는 꽤나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치여 성적을 말아드셨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나 스스로가 좋았다. 어머니가 과외 선생님이셔서 시험기간에는 밤 11시까지 우리 집 거실이 학생들로 그득그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친구들을 두고 전날 밤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한다며 교과서 한 번 쓱 훑고 먼저 잠드는 좀 재수 없는 모범생이었다랄까. 87점의 국사 시험지를 들고 분에 못 이겨 엉엉 울기도 했고. (친구들이 딱 싫어할 타입) 반에서 1,2등을 항상 도맡아 했었고 그 덕에 성적표를 들고 '역시, 지혜.'라고 말하시며 웃으시는 부모님의 웃는 얼굴도 꽤나 자주 볼 수 있었다. 나 스스로,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나 자신이 좋았다. 부모님에게 나는 항상 '걱정 없는 딸', '알아서 말 잘 듣는 딸'이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대학생 딸. 매주마다 집에 내려와 착실히 교회를 가고 알아서 공부 잘하고 알아서 학교생활 잘하는. 그런 문제없는 딸로 살아왔다. 부모님이 딸에게 기대하는 바를 착실하게 수행하고 지켜왔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살아야 나 스스로 삶의 의미가 생기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어느새 사수나 윗 분들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아랫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에 나는 너무나 빠릿빠릿했다. '선배, 선배는 좀 눈치 없는 척도 해야 돼. 선배 때문에 다른 애들이 힘들어해. 우리가 너무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것 같잖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고. 눈치 없는 척?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난 항상 그렇게 살아왔는데. 다른 팀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서도 결국 이끌어 가야 하는 역할은 자연스레 내 앞에 놓였고 그 역할을 어떻게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윗사람이 기대하는 결과물을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물을 들고 '역시 이렇게 해야지'라며 나를 보고 웃는 사수를 보며 안도하고 기뻐했다.


회사 생활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돈 받고 회사에 일 해주는 건데. 윗사람이 시키는 것은 빠르게 움직여서 결과물을 가져와야 하고 그 결과물에 따라 평가받고. 가족의 일원인 딸로 살면서 가족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게 딸로서의 도리 아니겠나. 딸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니 그 점에 맞추어서 사는 게 때로는 맞는 거고.


그렇게 한 구성원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나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회사,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기대. "지혜는 이런 사람."이라는 기대를 좇는 삶. 지나치게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살아왔던 내 인생, 그리고 진정한 나는 가끔 나를 잃고 살기도 한다.


너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하는 게 너 다운 것이잖아. 너 다웁지 못하게 웃는 척, 기쁜 척, 밝은 척, 진취적인 척. 상황을 모면하려 나답지 못하게 행동하며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나의 발버둥 침이 끝나고 난 후 내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그토록 힘들지 않았던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나, 또한 그 누군가는 이런 나 스스로의 모습에 그 누구보다 지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그런 나에게 이번 해를 살면서 이런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새로운 지침을 주었는데: 적당히. 무엇이든 적당히. 적당하게, 사회 구성원답게, 누군가를 실망시키기도 하면서 누군가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에 즐거움을 주기도 하면서. 나답지 못한 모습으로 상대를 대하면서 서로를 불편하게 하며, 나답지 못한 나의 모습에 그 무언가를 기대했던 상대에게 나에 대한 실망을 하지 않게 하는 것. 이 지침은 꽤나 이번 해를 사는 나에게 "나다움"을 주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삶이 조금은 평안해졌다.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조금의 불편함은 있음 주의.) 적당한 자리에 있는 '나'도 살아가는 데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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