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기회를 준다는 것

2. 꽤나 남을 위해 살아왔다

by JIHYE

내 사람. 내 편.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각자의 과거, 경험담, 취향, 가치를 공유하면서 '공통점'을 찾으려 한다. 탐색전이 시작된다. 공통점이 꽤 많이 겹치게 되고 추구하는 바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겨지면 '내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첨가되면 그 사이 '관계'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각자 상대방에 대한 라벨을 붙인다. 친구, 연인, 멘토 등.


나는 이 과정이 꽤나 빠르게 진전되는 사람이었다. 친구라는 라벨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붙여주기도 하고, 연인이라는 라벨을 의심 없이 기꺼이 붙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라벨을 붙인 순간부터 그들이 내게 해가 되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선택한 사람이기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회'를 관대하게 주었다. 그 관대한 기회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어야 했다.




내 주변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나에게 해로운 친구가 있었다.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이 맞아 매 달 마지막 주 금요일이 되면 홍대를 함께 누볐다. 택시비도 아까운 때라 아침 첫 차가 올 때까지 버스정류장에서 꾸벅꾸벅 같이 졸기도 했고, 웬 이상한 남자가 엮이려 하면 서로 방패막(?)이 돼주기도 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같이 술을 마셔주기도 했고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포장마차에서 닭똥집에 소주 한잔 하면서(20대 초반에는 이게 나름 로망이었다)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20대를 함께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함께 30대를 맞이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 중 한 명으로 서로를 라벨링 하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따금 싸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매번 싸움의 이유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싸움이라기보다는 '그녀 혼자만의 토라짐'이었다. 그 토라짐은 참 우연찮게도(지금 생각하면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친구가 생길 때였는데, 그때마다 이유 없이 토라지고 사라졌다. 이 토라짐이 시작되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쪽은 나였고 사실 그 노력을 하면서도 내가 무얼 잘못해서 이러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 '아,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 토라진 걸 풀어주는 기분이 이런 느낌이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의아함과 의문이 계속되는 친구라는 관계 속에서 삐그덕 댔고 비슷한 상황이 또 닥치게 되었을 때 이 친구라는 관계는 끝이 났다.


나중이 되어서야 "너와 나는 친구"라는 관계를 돌이켜봤을 때 그 친구는 내가 행복한 어떤 관계가, 혹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나의 행복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에게 나라는 존재는, '위로'였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을 보며 그 친구는 나의 상황과 본인의 상황을 비교하며 위안을 얻는. 무슨 생각으로 나는 이 사람을 친구라고 나의 소중한 마음들을 써줬던 걸까.




인연이라는 것을 믿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이,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숭고하다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인생에 내가 기억되는 것. 그리고 '거길 가봤었는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어떤 과거의 한 장소에, 나의 기억에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쉽사리 관계의 끝을 놓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나는 이 관계에서, 끊임없이 준 '넌 내게 좋은 사람일 거야'라는 기회 속에서 정작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나 생각했다. 기회를 주는 순간들이 연속되면서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았나. 상처 받고 있었더라면, 그 관계는 정작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거라면, 이기적일 줄도 알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해가 더 해지고 30대가 익숙해질 무렵, 어른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너에게 해가 되거나 관계가 무의미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너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만 남는 때가 올 거라고. 그리고 스스로 결핍이라고 느꼈던 부분들을 온전히는 아니지만 공감해주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들을 보는 지혜가 생길 거라고.


그런 지혜가 생기는 과정을 조금은 어렵게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겪을 수 있었던 것들에 조금만 힘을 빼고 나를 온전히 보아줄걸. 이제 그럴 수 있음에 조금은 사람으로서 성장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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