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꽤나 남을 위해 살아왔다
하루를 살면서 물음표를 가진 문장들을 얼마나 많이 마주할까? 회사원에게 그토록 어렵다는 점심을 고르는 순간 던져진 '칼국수 어때요?'라는 질문, 친구들과 만나는 날짜를 고를 때 '이번 주 주말에 만나는 거 어때?'라는 질문, 심지어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을 고를까 고민하는 순간에도 '이 음식 어떠세요?'라는 종업원의 친절함이 어린 질문 등 YES와 NO 사이 꼭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하루를 사는 나에게 던져진다. 그 순간에 나의 대답은 우선 YES였다. 선택권이 주어진 '나'의 리액션은, 어떤 대답을 해야 나에게 좋을지 생각하고 내뱉는 대답이라기보다 순간을 모면하려는 대답이었다. 그 어색한 잠시 잠깐의 침묵,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YES'를 원하는 눈빛에 그저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내뱉고 마는 것이었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가면 탈탈 털리는 '호갱님'이 바로 나였다. 자주 가는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워낙 구매하려고 했던 같은 색의 파운데이션을 고른다. 그러다 다른 상품들을 기웃기웃한다. 다른 상품들을 만져보며 관심을 표하는 순간, 신상품이 나왔다며 브랜드 판매원이 이것저것 추천해준다. 마지막 '어떤 상품이 맘에 드셨어요? 이 립스틱도 잘 어울리시던데, 구매하시면 잘 쓰실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네, 이 것도 주세요.'라고 대답한다. (통장에 아직 돈이 남아있던가.) 사려고 했던 파운데이션에 립스틱이 추가됐다. 그 순간, 판매원이 던지는 한 마디. '아까 보셨던 브로우까지 구매하시면 저희 파우치 드리는데, 브로우도 잘 쓰실 거예요! 파우치가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온 거라....' 모든 대화를 끝마치고 나오는 내 손엔 예상치 못했던 립스틱, 브로우, 그리고 리미티드 에디션 파우치까지 들려있다. 거절하지 못하는 나의 이 성격은 말도 안 되게도, 예기치 않은 과소비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나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더라. 내 업무가 눈 앞에 산더미처럼 놓여있는데도 다른 팀에서 나의 일과 상관없는 일들을 부탁하는 순간이 오면 우선 '알겠어요, 제가 처리해볼게요.'가 대답이었다. 부탁한 일까지 처리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기도 했고, 돌아오는 것들은 '고마워요, 지혜 씨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어.'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툭툭 쳐 주는 고마움의 행위뿐이었다.
'거절하는 내'가 조금은 어색했다. 거절할 때 겪어야 하는 그 쭈뼛쭈뼛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이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나를 위한 거절보다 남을 위한 선택을 기꺼이 해주었다. 그리고 거절한 이후의 상대방과 겪어야 하는 상황들이 어색하게 그려졌다. 그 어색함이 존재하지 않도록 우리를 위한 선택을 해주었다. 결국 그렇게 하자고 선택을 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던진 공은 나의 손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선택에 대한 결과를 이행해왔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왔다. 불편한 선택 속 거짓된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 감정들이 튀어나오는 순간은 시간이 갈수록 잦아졌고 그 불똥이 괜한 사람에게 튀기도 했다.
나는 까슬까슬한 스웨터를 못 입는다. 인터넷 쇼핑으로 겨울 스웨터를 살 땐 혼방률을 체크하기도 한다. 그래도 디자인이 예쁘니 한번 입어보자는 생각으로 당차게 입고 나간 날이면,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온 신경은 이 까슬까슬한 스웨터에 집중되어 있다. 긁적이기도 하고 스멀스멀 움직이면서 불편한 느낌을 지우려고 하지만 '내가 왜 오늘 이 스웨터를 골랐을까'라는 후회로 상심 가득한 얼굴을 숨기지 못한다. 집에 오자마자 1초도 안 돼서 스웨터를 벗어버리고 나면 그때서야 나도 모르는 해방감을 느낀다. 거절 앞에 내가 가진 감정은 이 까슬까슬한 스웨터와 같았다. 불편한 감정이 가득한, 숨기지 못하는 감정들이 있을 거란 걸 알면서 선택하게 되는.
많은 책들과 조언들이 있다. '거절의 기술'이라던지, '죄책감을 갖지 말고 거절해보세요'라던지, '거절할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라던지. 분명 사람은 거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선천적인 두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추측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이 NO라고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또 이 선택과 순간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남을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나를 위한 선택이 우선시 되어야 '관계' 앞에서 진실성 있게 대할 수 있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거절을 하는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그 선택을 하는 순간을 현명하게 대처했을 때 나는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분명 살아가는 나에게 선택의 순간은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무겁게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이 YES이건 NO이건 무엇이든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을 실패한 스웨터처럼 까슬까슬하지 않게, 유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