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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30. 2022

거실과 부엌, 함께의 공간

이전 아파트에서의 거실은 아이들 교육상 TV도 없이 벽 한쪽을 책장으로 채우고 지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책은 많아졌고 다른 벽면까지 책장으로 채워지면서 거실은 아이들 중심 공간이 되었다. 거실의 서재화가 육아의 정답인것처럼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협소한 공간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이사 후 철거부터 모든 것이 우리 부부의 손에서 탄생한 거실은 이제까지의 거실과는 다른 느낌이다.

흔한 거실 풍경이지만 평범함 속 우리만 알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늦은 저녁 남편과 함께 맥주 한 잔과 영화 한 편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자면 쉼 이상의 감정이 차오른다. 온전하게 가족 모두가 쉴 수 있는 공간을 지나면 부엌이 나온다. 

요리 하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부엌에서만큼은 그 시간이 즐거워지곤 한다. 요리보다 더 귀찮았던 설거지도 라디오를 틀어놓고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과 작은 초록화분을 보고 있자면 노동이 아닌 힐링의 시간이 된다. 틈이 날때마다 정리를 하고 이곳 저곳 작은 공간에 나만의 꾸밈을 만들어가는 모습에 남편이 묻는다. 


"당신은 이렇게 꾸미고 하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모습일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스스로 타협하며 중요하다 여겨지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어린 시절 엄마는 집을 꾸미고 치우는 일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엄마가 던진 한 마디가 오래동안 기억에 남았다. 


"치워서 티가 나야 정리도 하지."


물론 빈곤한 삶으로 인해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공간은 어떤 노력의 시간도 티가 나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은 손을 댈 수록 빛이 난다.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해 우리 가족아 함께 하는 공간에 따뜻함이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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