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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30. 2022

미안하고 고마운 내 아이들을 위한 공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하는 셀프리모델링이다보니 아이들은 석고보드 벽 상태의 방에서 한 동안 지내야 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아이들의 방이기에 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기에 벽지 색부터 많은 생각을 하며 고르기도 했다.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핑크 빛 벽지와 하늘하늘 거리는 커튼과 흰색 블라인드까지 그동안 힘들었을 시간을 뒤늦게 남아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창문에 맞추어 책상 책꽂이 사이즈를 줄이고 좋아하는 인형을 버리지 않고 꾸며 완성된 날...

딸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 우와... 완전 인스타 감성 방으로 바뀌었네요. 저 이제 도서관에 가서 공부 안 할래요. 친구한테 자랑도 할 겸 전화해야겠어요. 진짜 이뻐요~"


아이가 좋아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게 즐거워하는 모습에 더 일찍 제대로 된 방을 만들어주지 못함이 미안해졌다. 


2살 터울의 큰 아이 방은 더 늦게 마무리가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동생과는 달리 오픈되어 있는 1층 서재에서 지내는 시간도 충분하다며 자신의 방은 최대한 늦게 작업하셔도 된다고 해왔었다. 그런 부분에 무딘 성향 탓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고생하는 엄마, 아빠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불 끄고 컴퓨터를 하니 벽지가 무슨 색이든 보이지도 않고 모기가 있어도 벽을 쳐서 잡는데 신경 쓰이지 않으니 그냥 이 상태로 놔두라던 아들이 동생의 방을 보고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잘 자라준 아들을 위해 군대 첫 휴가 선물로 방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핑크 핑크 한 동생 방과는 달리 기존 갈색톤의 가구와도 어울리게 블루와 그레이 벽지로 마감을 했다. 아기자기 한 꾸밈보다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내 아이의 지나온 시간을 방 곳곳에 배치했다. 침대 위 선반에는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종이로 만든 버스 모형들이 자리 잡았다. 벽에 걸린 큰 액자나 작은 창문 앞 탁상 다이어리 또한 내 아이의 취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직접 찍은 사진이 쓰인 광고와 달력은 그 어떤 화려한 그림보다 멋지기에 액자로 만들었다. 

아이의 추억이 담긴 자동차 모형을 모두 보이게 진열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꽂이 한 칸을 꾸미면서도 아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좋아하는 모습에 어찌나 뿌듯하던지...


어릴 적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최신 버전으로 하나 만들어야겠다며 다짐을 전해오기도 하고, 임시로 진열해 놓은 종이모형을 나름의 의미 기준으로 바꾸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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