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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30. 2022

여전히 부족함을 만드는 중입니다.

2018년 5월 30일, 철거로 시작한 리모델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제는 생활함에 불편함은 없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곳이 집안 곳곳에 있다. 층고가 높아 아직 벽지 작업을 하지 못한 복층 계단과 단열을 위해 만들어서 설치하기로 한 중문 그리고 아직 시멘트 벽과 바닥상태인 2층 화장실까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직접 집을 고치는 시간도 쉽지 않았지만 남편의 퇴사와 맞물린 상황에 경제적 고민까지 더해져 심적 부담이 커지기도 했다. 이해와 사랑이 없었다면 서로를 탓하며 다투고 악몽 같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조금 절약하며 서로를 더 많이 아끼려 노력했다. 그런 시간 덕분이었을까. 집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어쩌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산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서 신혼부부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좋은 시간이 많아서가 아닌 힘든 상황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었다는 남편, 내가 느낀 외로움과 힘겨움을 느끼지 않고 내 아이들이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나... 아이들이 멋지게 자립해나갈 준비가 마무리된 지금 어쩌면 우리의 꿈은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다. 가족들이 집을 떠올리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남편, 나는 장담한다. 엄마인 내가 그러하고 그런 내가 키운 아이들 역시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다시 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종종 남편과 나누는 가상 질문 중 하나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의 힘겨움을 너무나도 잘 알아버린 지금은 다시는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나. 반면 남편은 경험을 한 번 했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온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다시 못 도와주니 그때는 보조 작업자를 구해서 함께 하라고 이야기 하지만 속 마음은 다시 이 시간을 함께 한다면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이제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어떤 상황에도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과 부족한 나에 비해 너무나도 잘 자라준 아이들 덕분에 경력단절의 시간을 끝내고 40이 넘어 신입사원이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며 자신이 잘 벌지 못해 고생시킨다고 미안해하는 남편,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고생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이 줄 수 있으니 엄마가 좋아하는 독서모임 하고 책 읽으며 살라는 아들, 훌쩍 자라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딸 덕분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며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닌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나에게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작은 것이라도 가진 것을 소중히 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능력이 있으니 가능할지 않을까.


오늘은 안 방 드레스룸에 만들어진 옷장에 옷걸이 봉을 달 예정이다.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우리는 집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우리 가족만의 완벽함을 채우는 부족함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을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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