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행 에필로그

by 바보

1. 아들아! 우리는 자금성을 다녀왔어! 사람 얼굴(모택동) 사진이 걸려있던 입구가 천안문이고 안쪽 성, 우리가 점심밥 먹을 시간을 희생하여 뛰어다니며 구경한 엄청난 규모의 성이 바로 우리가 찾아 헤맨 자금성이란 사실을 한국 와서 검색해보고 알게 되었어.

2. 여행이 주는 행복의 진정한 가치는 아픈 다리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걱정으로 점점 희미해졌다가,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이 풀릴 때쯤 추억이 된 사진들을 보며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 같아.

3.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가 퇴근할 때쯤 엄마는 출근해서 홀로 너를 돌보았거든. 그때는 솔직히 힘들기만 했어.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행복이었다 싶더라. 이 것과 1번 2번을 통합해서 생각해보면, 아빠는 참 미련한 사람 같아. 늘 그 당시에는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는 우둔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4. 미련함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런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인생의 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 같아.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느니 차라리 서둘러 인정하고 오늘 하루를 긍정적이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금성과 천안문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건 좀 심한 것 같아. 여행지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접할 때의 흥분과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미리 검색하지 않고 떠났던 건데, 자금성에 가서 그게 자금성 인지도 모르고 돌아오는 건 좀 심했다 싶어. 물론 중국에서 구글맵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조금만 미리 검색해 봤더라면 '중국에서 구글맵을 사용할 수 없음'은 알 수 있었겠지. 그래서 어느 정도의 검색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어.

5. 알고 보니 프랑스는 더러운 공중화장실과 지하철, 그리고 불친절함과 인종차별로 유명한 나라였어. 청소도 더럽게 안 하고 더럽게 불친절한 파리지엥을 욕했었는데, 애초에 낭만적인 파리를 꿈꿨던 우리의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느릿느릿한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놀러온 어떤 외국인이 '이 나라는 도대체 왜 무슨 일이든 빨리 빨리 하라고 하냐'며 불평을 터트린다면 황당한 일이겠지.

6.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집시들의 행태도 매뉴얼처럼 떠돌고 있더라. 우리가 집시들에게 둘러 쌓였을 때 본능적으로 뛰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어. 만약 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었을 거야. 그리고 그 이후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 이역만리 땅에서 빈털터리가 된 두 남자라니! 게다가 그곳이 인종차별의 나라 프랑스라니! 네가 생각해도 아찔하지? 그러니 다음에는 꼭 공부를 하고 떠나자.

7. 아빠가 상담을 공부할 때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많은 이웃들이 겪고 있는, 하지만 결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고통의 종류에 대해 알게 되었어. 남편이나 아내가 자살한 경우, 아들이나 딸이 자살한 경우, 우울증이나 조울증, 약물중독,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다양한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음을 알게 되었어. SNS를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에는 행복한 사람들일 것을 생각해보면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지. 우리 모두의 삶은 불행과 행복의 어느 지점일 테고, 그중 일부는 불행 쪽에 좀 더 치우치고 또 다른 일부는 행복에 조금 더 치우치겠지만, 100% 행복이나 100% 불행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아빠의 마음으로 너만은 예외였으면 좋겠어. 네 삶에는 불행은 전혀 없고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실은 배탈도 나고 길을 잃는 등 이런저런 고난이 있었지만, 일 년쯤 지나면 그런 것들은 다 잊히고 행복한 추억만 남겨지면 좋겠어.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아는데, 아빠 마음이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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