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려면 걷기 여행을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작가 소개엔 브런치를 쓰기 시작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었다.(지금은 바꿨다.)
"선진국처럼 장애인과 쉽게 친구 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 소망을 가지게 된 건 캐나다 교포 친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캐나다 장애인 복지문화와 인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런 문화를 처음 접해본지라 감동스러웠다. 한국 장애 쪽 문화를 몰랐을 땐, 그런 문화를 수입해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대한 책도 쓰려했다. 생전 관심을 가지지 않던 한국 장애인 가족 사회의 이야기들과 그들의 책을 읽어봤다. 이미 나와 같이 외국 복지문화를 접하고 장애인권운동을 하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많아도 바뀌지 않는 답답한 한국도 보였다. 내가 한국 내에서도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들과 연대해서 같이 인권 운동을 벌일 것인가? 그렇게 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결론은 아니었다.
장애 당사자인 화섭 씨도 그런 욕구는 없어 보였다. 브런치 내 글을 보고, 화섭 씨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만나면 친절하게 화섭 씨는 인사했지만, 그들과 사귀는 건 의무처럼 대했다. 정직한 화섭 씨라 행동을 보면 안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구가 그리 크지 않다. 40대 중반을 달려가는 화섭 씨는 이미 자신의 일상의 루틴이 견고하게 짜여 있었다. 갱년기를 맞이해 빈혈에 아침에 휘청거렸던 나와는 달랐다. (최근엔 빈혈약을 먹고 많이 회복했다.) 화섭 씨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을 한다. 올봄 들어 봉와직염이 도져 발이 아프자, 새벽에 일어나 뒷산으로 가 맨땅 걷기도 혼자 잘했던 화섭 씨다. 통증이 없어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그 루틴이 없어졌지만, 건강해졌다. 자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다니 기특했다.
나는 평생 어떤 강박에 매여 살았다. 내가 부족하고 열등하다는 강박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잘 나가는 사람처럼 되고 싶은 질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걸 자기 계발의 계기로 쓰면 좋겠지만, 갱년기로 바뀐 몸이 말하는 것은 그렇고 싶지 않다. 세상엔 성공하고 돈 많이 번 사람이 많다. 그들이 존경스럽고 따라 하고 싶냐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부, 지위를 내려놓고 호수 근처에서 간소하게 살았던 윌든이다. 복지관에서 일하던 수녀님이 전근을 가면 택배박스 두 개 정도의 짐만 전재산이라던 소박함이다. 적은 물질을 가지고도 정신이 풍요로운 사람들이 부럽고 닮고 싶다.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다.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면 행복할 것 같다지만, 막상 그 돈을 가지면 나보다 더 돈을 가진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결국 돈은 삶의 수단이기에 그걸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철학이 정리되지 않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고 한다.
돈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난 솔직히 돈을 많이 버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결핍을 자극시켜 소비를 유도한다. 항상 내가 모자라다고 느끼게 만든다. 나도 그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최근까지도 나는 자기 계발 강의에 돈을 썼다. 그러다, 내가 반복적인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구나.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정신적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주워 들어왔던 게 많았다. 바보처럼 빈틈 있게 사는걸 허용하면 모든 게 편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뭔가 마음의 공기가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보처럼 살아도 된다고 허용했다. 나는 돈을 많이 벌 정도의 욕망도 강하지 않고, 세련되고 머리 회전 빠른 사람도 아니다. 순박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했다. 미국 여행 전, 미국 유학생을 만났다. 그녀가 뉴욕 여행 가서 뭘 하고 싶냐고 물어 센트럴 파크 산책이라고 하니 "언니 참 소박하네요."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센트럴 파크를 쏘다니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한국인이 먹기에 정말 큰 미국식 핫도그를 먹어서 일지도 모른다. 날씨는 좋았고, 쾌적하고 예쁜 길이 계속 있었다.
화섭 씨도 그리 큰 욕심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 순간 알았다. 그저 나는 사회가 원하는 어떤 모델이 되려고 했다는 걸. 그런 모델이 되면 인정도 받고, 칭찬도 받으니까. 물론 기본적인 혜택도 못 받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더 복지가 가야 한다. 교육혜택이 필요한 어린이 장애인들에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화섭 씨는 중증도 어린이도 아니다. 나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할 정도로 마음이 강하거나, 주장을 잘하거나, 말을 잘하거나,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거나, 인권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있지 않다. 결국 처음 세웠던 목표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브런치 글을 써오며 나에게 물어보며 알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도 아니면서 말 뱉었다고, 글 썼다고 그냥 무작정 했으면, 마음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어색하고 힘들면 어쩔뻔했나. 그럼, 진짜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생존하는 것이고, 화섭 씨와 나에게 주어진 수명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에 나온 도널드처럼 말이다. 인간이 그냥 생존하는 것에 만족했다면, 지구도 이리 많이 오염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둘이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봤다. 둘 다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오래 걷기다. 작년에 화섭이와 한 일 중 제일 즐거웠던 일이 서울성곽길 완주였다. 그 즐거움을 유지하고자 서울 둘레길 한 코스를 걷다 코로나도 심해지고, 내가 갱년기가 심해져 중단했다. 서울 둘레길을 더 돌고 싶었다. 화섭이에게 물어보니 누나랑 걸었던 일이 좋다고 했다. 서울 둘레길을 조금씩 걷는 게 우리 다운 일이었다.
도널드처럼 자폐를 가진 화섭 씨가 일상을 잘 살고 있다는 걸 계속 쓰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폐라면 불편하고, 불행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도 하고, 많은 부모님들이 자폐 어린이가 자라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시니까. 중년 화섭 씨가 있는 그대로 건강관리하며 잘 살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도 희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도널드 이야기를 읽고 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못 가면서, 여행에 대한 영상이나 강의를 찾아 듣게 되었다. 대리 만족이다. 그중 유라시아 견문록을 쓰신 이병한 님의 강의는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유라시아 100개 도시를 다니며 도시들에 머물며 살며, 현재 아시아의 나라들과 유럽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현장의 도서관과 서점, 학자들을 만나며 조사해서 쓰신 것이다. 예전에 지구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 올 거라는 트렌드를 읽은 적 있다. 이 분은 그 구체적인 그 조짐을 이야기해주셨다. 지구 환경문제와 기후위기를 풀기 위해선 서구의 자본주의는 이득을 포기하기 힘드니, 자연을 존중했던 동양의 고대 문화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유라시아의 학자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병한 님은 역사학자 이기도 해서, 기존의 흐름을 정리하기도 했는데, 이 말이 인상 깊었다.
최근 역사엔 억눌린 인간 계층을 해방시키기 위한 운동들이 수십 년간 진행되어왔다. 여성인권 해방, 인종차별 해방, 장애인 차별 해방 등등. 그런데 현재 남은 건 진정한 해방은 없고, 각 계층 간의 갈등과 자신의 위치에서 보는 결핍뿐이었다. 물론 아주 옛날에는 심하게 인권이 억눌리고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은 계층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해방이 돼도, 한계 없이 해방되길 주장할 것 같다는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로 갈등이 생긴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해방을 위해 주장하고 갈등만 할게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공통과제를 위해 인간의 욕구를 내려놓은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신을 절제하고 자연앞에 겸손한 인간다운 사람이 되는 수양 말이다. 결국 인간의 욕구를 힘이 강한 계층부터 약자까지 주장하다, 우리의 터전인 지구 생명의 권리를 뺏아가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음 천년은 자연의 생물을 섬겨야 한다 하셨고, 어느 나라에서는 자연법을 만들어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에게 법정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다. 결국, 인간 중심의 사고를 내려놓고,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는 요구를 기후위기 시대에 지성인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년이 된 화섭 씨와 나도 욕망을 내려놓고 (특히 나. 내가 욕심이 컸지)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맞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소박한 행복전문가는 화섭 씨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환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그런 결론까지 내려졌다. 많이 벌거나 쓰지 않으면서도 만족하고 행복한 삶.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라시아 견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다녀왔던 7개의 나라의 여행들도 생각해봤다. 다양한 형태로 여행을 갔었는데, 내가 제일 부러웠던 건 두발로 걸어서 걷기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제일 활기차 보이고, 건강해 보이고, 지구를 존중하며 여행하는 것 같았다. 홍콩 케이블카를 타고, 새로운 섬으로 건너갔을 때였다. 케이블카 위에서 본 홍콩 바다 풍경들이 멋졌지만, 케이블카 아래 간편한 옷을 입고 숲을 이룬 섬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내내 이미지로 남았다. 난 걷기 여행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화섭 씨랑 다음 주에 서울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이 결정하기 전에 이런 긴 생각이 있었냐고 물으면 그게 나라고 말하겠다. 핸드폰을 뒤지다가, 예전에 마음에 와닿아 저장해 둔 아니타 무르자니 명언을 만났다.
될 수 있는 한, 나 자신이 돼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여기 있기 위해 온 우주를 박탈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남들이 모두 하는 걸 따라 하라고 나를 여기 있게 한건 아닌 것 같다. 나의 결을 보고, 내 마음을 먼저 봐야 우주가 왜 지구로 나를 보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꼬리말) 발행 후 내 글을 다시 보니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 마크가 보였다. 나도 지난주 내내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생존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을 뜨니 이별이 너무 쓰라린걸. 화섭씨와 나의 생존도 감사하고, 내 주변 사람들 생존도 감사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다시 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안전한 나라가 될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