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때 힘을 준 작가이자 호스피스 전문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책 <인생수업> 공동저자이다. 이 책은 류시화 님이 번역해서 널리 읽혔었다. 내가 20대에 우리 엄마는 한 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셨다. 당시 난 정신적인 방황 기였던 터라, 엄마에게 들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희한하다. 삶의 이유를 모를 때 죽음의 이야기가 와닿다니. 당시, 임종 분야 연구의 개척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들이 끌려서 찾아 읽었었다.
엘리자베스는 세 쌍둥이 중 하나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자신을 자매들과 헤갈려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남들과 다른 일을 했다고 하신다. 그녀의 어록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게 많다. 특히 "죽음을 알면 삶을 알 수 있다. " "크게 비워야 크게 얻는다." 같은 것.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매들 (1942).
난 어릴 때부터 진지충이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시끄러운 가정환경 등 마음이 편하지 않아, 삶의 철학을 죽음을 통해 배우고 싶었다. 당시 그녀의 책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많이 얻었다. 특히, 어릴 때 마음고생을 많이 하면 일찍 성숙해진다는 구절을 읽었다. 당시 예를 들던 게, 큰 병을 일찍 앓은 아이들은 대화를 해보면 노인과 대화하는 것 같다는 걸. 인생이 항상 꽃피는 정원 같으면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인생의 고난은 성숙을 위해 있다고.
인간은 무언가를 얻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잃는 것에서 의미를 잘 찾지 못한다고. 하지만, 잃어야 빈자리가 생겨 새로운 게 들어온다고. 그러니, 상실을 두려워 말라고.
내 인생도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어간다. 가을엔 나무들은 모든 잎을 버린다. 열매마저 땅 위로 떨군다. 당시 내 마음고생들을 성숙의 수단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면 그냥 잘 비우는 게 성숙한 것 같다. 특별히 성숙한 내가 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성숙이다. 젊을 땐 체력이 남아 있어 이상적인 나를 만드는 꿈을 잡고 있었는데, 잡고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닌 것 같다. 그 꿈마저 비우면 새로운 게 들어오겠지.
한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관심 있을 때, 생긴 버릇이 있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이 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로운 꿈이 생겼다. 긴 걷기 여행을 떠나는 것. 11월 말에 지리사 둘레길 걷기부터 일정을 잡았다.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