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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Oct 21. 2020

화섭 씨는 스턴트맨?!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올해 초 화섭 씨는 봉와직염으로 입원했다. 그때, 화섭 씨도 나이 들어가고 아플 수 있다는 걸 인지했다. 너무나 당연한걸 병이 나야 인지하다니, 인간은 참 어리석기도 하다. 입원 시 지원받는 보험이 필요했다. 아는 FC에게 문의해봤다.


“자폐 장애인은 일반인보다 충동적이라 사고 위험이 높아 유병자 상품을 들어야 해요. 일반보험보다 비쌉니다.”


전두엽 부분 장애라 충동적인 건 인정하지만, 장애인의 소득이 일반인보다 적은데, 높은 보험비를 내야 하다니?! 화섭 씨가 스턴트맨인가? 어릴 땐 충동적인 게 있었지만 40대가 되어선 차분해졌는데, 겁이 많아 오히려 불안한 일은 안 하는데 보험회사의 판단은 이렇구나.  씁쓸했다.


특히 유병자라는 표현은 "병이 있는 사람"으로 들렸다. 장애는 병이 아니라 개성이다. 단어 하나에 주는 이미지가 중요한데, 건의해서 용어를 바꾸고 싶었다.


“우체국에 장애인 전용 보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FC의 조언대로 검색해보니 어깨동무 보험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만 20세 -37세 성인 장애인 370명에게 우체국에서 보험비 지원 해준 공고가 뜬다. 아쉽게도 화섭 씨는 대상도 안되고, 시기도 놓친 터라. 우체국 보험에 전화해 관련 FC와 전화 상담했다. 단, 370명이라는 숫자도 많이 아쉬웠다. 차차 늘어날 테니 인내심을 가지자. 결론은 동생과 우체국에 직접 방문해 상담받아 보기로 했다.


보통 보험을 든다고 하면, FC가 가입자가 있는 근처로 찾아와 대기해준다. 반면, 어깨동무 보험은 직접 FC를 만나러 우체국에 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일반 보험과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난 보험의 거품도 알고 있던 터라 이런 차이도 감수하기로 했다.


우체국 FC실의 휴게공간으로 안내해줬다. 화섭 씨는 보험을 들 거라고 해서 따라왔지만, 주의는 우체국 입구의 봉투 파는 곳에 가 있다. 라디오 방송 경품 응모에 보낼 것을 출력해두었단다. 그걸 담을 봉투랑 우표를 사는 게 관심이라고 나를 만나자마자 이야기했다. 그래도, 참을성 있게 누나 옆에 앉았다. FC가 권하는 1회용 커피도 셀프로 잘 타서 마셨다.


처음 만난 FC는 붉은 정장을 입었다. 이 붉은색 옷답게 엄청 성격이 급했다. 말도 빠르고, 전화로 상담한 봉와직염이란 질병을 검색해봤다며 첫마디가 자기가 장애인도 일반보험심사를 통과시켜 들게 해줬다고 한다. 난 장애인 전용 어깨동무 보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암보장형과 상해보장형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보험에서 쓰는 용어들의 뜻이 궁금해, 질문이 많다. 재해란 어떨 때를 말하나요? 걷다가 넘어지거나 목욕탕에서 미끄러져서 엎어지는 걸 말하나요? 이런 질문을 가입설계서를 찬찬히 보며 하고 있는데, 자꾸 질문을 막고 일반인 보험을 권한다.


"참 성격 급하시네요. 전 어깨동무 보험을 알고 싶어요. 여기 있는 내용을 다 숙지 못해서 묻고 있는 중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서툴렀다. 동생에게 대뜸 얼마짜리 보험을 예상하고 왔냐고 질문했다. 화섭 씨는 보험에 관심이 없어 그런 질문은 어렵다. 내가 화섭 씨에게 물어봤다.


"보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때까지 보험가입을 권하면 다 거절해왔어."


"이 보험은 매달 13,300원 5년간 내고 10년간 혜택을 받아.  네가 넘어져서 다치면 10만원 준대. 아프지 않으면 2년마다 10만 원씩 나와. 이런 거 어때?"


본인에게 10만 원이 생긴다고 하니 좋다고 한다. 사실 이런 설명은 FC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장애인 보험을 설계해주시는 분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대화하는 법이 서툴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원래 나는 뒷담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편하면 그 사람 앞에서 무엇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상담 후 브런치에 불편한 걸 쓰긴 싫지만, 쓰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인과 대화하는 게 서툴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 FC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보험을 팔면서 대화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환경 문제이고, 고객의 입장을 묻기보다 더 비싼 상품을 팔고 싶게 만드는 FC들만의 문화가 문제지.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문제를 드러내야 개선을 시작할 수 있어서. 장애인들이 숫자도 소수이니, 이런 소수 고객에 대한 배려가 없어왔겠지. 사실 장애인들의 보험상품이 아주 적고. 환경은 이해하지만, 왠지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분통만 터진다고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이런 상황 때문에 나는 글을 쓰고, 알리고, 나중에 장애인식개선 강사도 하고 싶으니까. 더 멀리, 문제 개선의 방향으로 보자.


어찌 되었건, 일반인 보험도 설명을 들어주었다. FC가 하고 싶었던 말이니 들어는 줘야지. 혜택이 많은데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FC는 어깨동무 보험이 커버 못하는 게 많다는 쪽으로 유도하지만, 난 욕심이 그리 많지 않다.


"전 보험이 모든 걸 커버하길 바라지 않아요. 동생이 활동 많이 하고 급하게 행동하는 게 있어 상해보장형이 좋네요. 일단 설계서를 가져가서 가족과 상의할게요.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사이 화섭 씨는 내 폰을 가져다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다. 자기 인스타에 댓글이 얼마나 달렸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다 끝났다고 이야기하니 다시 화제는 봉투로 간다. FC는 자기 자리로 가서 우체국보험 마크가 크게 찍힌 대봉투 하나를 준다. 화섭 씨는 아무것도 안 찍힌 걸 원해서 망설이는 분위기다. 내가 옆에서 "화섭아, 그 마크는 누나가 종이로 덮어주면 되니까 받아가자!"라고 말했다. 봉투를 받아왔지만 뭔가 풀리지 않는 표정이다. 


FC실을 나와 우체국 창구로 나오니 우표 파는 곳에 대봉투가 있다. 그걸 발견한 화섭 씨는 얼른 뛰어가 대봉투를 100원 내고 산다. 이제야 만족하는 얼굴이다. 그래, 저렇게 본인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화섭 씨 건강을 지켜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랑 설계서를 놓고 상의했다. 엄마는 전립선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병 중이시다. 아버지는 평생 보험 하나 안 들어놓으셨는데, 국가에서 건강보험 혜택이 잘 나와 큰돈 들지 않고 치료 중이시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하시며 암보험은 들지 말고, 상해보험은 들자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낼께."라고 하신다.


"엄마, 이제 화섭이 케어를 인수인계해. 나랑 화섭이가 보험비 부담할게. 화섭이 통장으로 내가 매달 보험비 이체해줄게."


평생 화섭이를 돌봐온 엄마시다. 우리들에게 뭘 해달라는 요청도 별 안 하신다. 내가 자발적으로 인수인계받겠다고 했다. 보험비 13,300원 중 8,300원을 매달 내라고 화섭 씨에게 이야기하니 싫어한다. 다시 "건강하면 2년마다 10만 원씩 나와. 그럼 누나가 8,300원 낼께. 네가 5,000원 내." 라고 하니 수긍한다. 평소 성격이 급해서 몸부터 먼저 움직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하다 넘어질 것 같기도 해서 이 보험이 딱이다. 또한 이 보험은 10년만 된다. 10년 후에는 세상이 더 좋아져 더 좋은 보험이 나올 것도 같고. 그때는 장애인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 FC를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그때는 FC들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하면 더 좋고.


어깨동무 보험 설계서. 건강진단자금을 2년마다 받는 화섭 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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