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태리 Oct 30. 2020

갱년기 누나와 봉와직염 막내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어느덧 내 나이 40대 후반이고, 막내 화섭씨는 40대 초반이다. 반백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들의 몸에 나이듦의 신호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화섭씨는 올해 초 겨울 맹장염으로 입원했다. 수술 후 퇴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발 위에 염증이 와 다시 입원했다. 병명은 봉와직염. 나이가 들면 염증성 질환을 조심해야 한다던데, 40대 초반의 화섭씨에게 나타난것이다. 평소 배고픔을 참지 못해, 빨리 먹을 수 있는 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먹던 식습관이 원인인듯 싶다. 본인도 통증이 나타나니 인터넷 검색후 인스턴트를 줄였다. 엄마를 졸라 집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은데, 화섭씨는 대단하다.


나는 올 가을 환절기가 되자 갱년기가 왔다. 식은땀이 계속 나고, 얼굴에 열이 몰린다. 새벽2시에 잠을 깨서 해가 뜰때까지 잠이 안온다.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건강기능식품과 석류즙과 칡즙을 매일 먹는다. 식은땀과 열나는 증상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새벽에 깨는것은 여전하다. 깨었을 때 새벽4시면 감사하고, 2시면 고역이다. 2시에 일어나면 그날 낮이 괴롭기 때문이다. 이제는 낮이 괴로울거 미리 걱정안하고, 새벽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어쩔땐 새벽2시에 브런치를 발행할때도 있다. 신기한건 나처럼 잠을 안자는건지, 외국에서 보시는건지 그 시간에 라이크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이다. 24시간 편의점처럼 눌러주시는 라이크 감사합니다.


나와 막내는 변화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도 이 중년을 거쳐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명리학을 보면 세상 모든것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인간이 괴롭다고 한다. 어린시절,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던 적도 있었고, 팽팽한 얼굴로 활짝 핀 시절도 있었다. 그때 봄과 여름의 시절, 얻는것에 대해서 감사를 몰랐고, 인지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인간이란게 어찌나 간사한지 중년이 되어 그때 얻는걸 하나둘씩 내려놓아야하는 시기가 되자, 아쉽기도 하고 조금은 억울하거나 섭섭하기도 하다. 갱년기 증상이 주변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많이 느끼는데, 그 섭섭함 뒤에는 출산의 능력이 사라지는것, 팔팔한 기력이 줄어드는것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깔려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모드로 세상을 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욕심내던 것들을 내려놓고, 제한된 체력 안에서 정말 중요한것을 선택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몸으로 하는 활동보다 정신적 성숙과 지혜를 깊게 하라는 신호 같기도 하다. 


갱년기 증상이 심하던 어느 날, 나무를 보기 위해 북한산 둘레길을 갔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사니까 오래된 나무를 보면 뭔가 배울것이 있을것 같았다. 근처 왕실묘역길을 걷다, 방학동 은행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도 봤던 나무지만, 갱년기가 되어 다시 보니 새롭게 보였다. 550년 된 저 나무는 신기하게 매년 잎파리를 틔우고, 가을이 되면 노란 단풍을 내어 놓는다. 아기나무였을때부터 550번 그 작업을 계절을 따라 해왔을 것이다. 그걸 지금도 해오고 있고. 그 모습이 생명을 가진 자의 의무 같았다. 나이가 어찌되었건 그 나이에 맞는 무언가를 생산해내는것. 그 생산물이 청년시절에 했던것과는 분명 다를것이다. 그 다름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나 화섭씨에게 필요할 것이고.


550년된 방학동 은행나무. 지지대가 필요할 정도로 고령이지만, 매년 이파리를 틔우고 가을에 노란 은행잎을 만든다.


동생과 정기적으로 좋은 곳을 걷기로 했다. 화섭씨는 평소에 휴일에도 밖에 나가 일정 걸음을 걷는다. 태양아래서, 비오는 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인간은 걸어야하고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존재인양 매일 걷는다. 그 걷는 길에 갱년이 누나도 얹혀서 같이 걸어보려 한다. 그러다 우리가 생산해야할 무언가를 만나면 또 같이 하면 되겠지. 인간은 자고로 나이들어왔고, 그 몸에 맞는 적응을 해왔으니, 나도 방학동 은행나무처럼 그 과정을 거치면 되는것이다. 그 길에 화섭씨와 동행할 수 있어 좋고, 더 나아가 주변사람들과 같이 갈수 있으니 두렵지 않다.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날엔 경춘선 숲길을 갔다. 지난 6월, 월계역에서 화랑대역까지 걷다 화섭씨가 그만하고 싶다 해서 멈췄던 화랑대에 다시 가자 했다. 화섭씨는 서울을 벗어나면 너무 멀어 두렵고, 서울안에서 걷는게 좋단다. 서울이 넓어서 다행이다.



화랑대역에서 만나 마스크를 끼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하는 대화는 술술 풀린다. 화섭씨와 대화할때는 퀴즈나 본인의 최애 잡지인 ㅎ잡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다. 예전에 화섭씨 관심주제가 미아였던적도 있었다. 본인이 어릴때 미아가 많이 되어봐서 그런지 정말 오랫동안 그 주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는 솔직히 괴로웠다. 그런데, ㅎ잡지에서 경품 추천도 몇번 되고, 최근 인터뷰 기사도 나와서 그런지 긍정적으로 관심주제가 바뀌었다. 참 감사했다.


왜 이 잡지 퀴즈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니 객관식으로 나오는 보기를 재치있게 기자들이 잘 쓴다고 한다. 보기가 엉뚱한 단어들로 나열되어 퀴즈를 풀다보면 빵 터진다고 한다. 그런 유머를 좋아하는구나. 이 재미를 매년 맛보고 싶어 이 잡지를 보는데, 최근 구독자가 줄어 잡지가 후원자를 모집했다. 그래서, 본인 돈을 일부 이체해 후원하고, 즐겁게 퀴즈를 즐기는 화섭씨. 경품 당첨된 사람들 인터뷰한 기사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재밌나보다. 중학생이 자기 핸드폰이 없어 아버지 핸드폰으로 응모한 이야기 등 본인이 좋아했던 에피소드를 풀기 바쁘다.화섭씨 이야기를 듣자하니 ㅎ 잡지에게 고마와, 나도 일정금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밌는 퀴즈를 내주시는 한겨레21 기자님 감사합니다!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만보를 감쪽같이 채웠다. 화섭씨가 좋아하는 피자와 파스타로 저녁을 먹고 추석연휴를 보람차게 완성했다. 겨울에는 경춘선 숲길 못다걸은 거리를 마저 걷기로 했다. 걷기를 좋아하는 누나로선 반가운 약속이다.


파스타집에 앉자마자 와이파이 번호를 묻고 본인이 좋아하는 영상을 즐기는 화섭씨. 참 기계에 능숙하다.


엄마가 화섭씨를 키울때 "이 아이에 맞는 성장이 있을것이니 그것을 도와주자."고 마음 먹으셨다 한다. 화섭씨 돌봄 전문가는 엄마이다. 이제 엄마의 지혜를 내가 대물림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면 된다. 사는건 살아지게 되어 있다.

이전 23화 화섭 씨는 스턴트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