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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Feb 05. 2022

느리지만 성장한다

화섭씨의 첫 친척집 방문기

인간은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얻고 성장한다.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면 상호작용이 힘들다. 발달이 지연된다. 비장애인이 쉽게 얻는 능력을 얻지 못한다. 연약하다.


하지만, 느려도 성장한다. 달팽이가 너무 느려 전진하지 않는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움직이고 있는것처럼. 내동생 화섭씨도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동생은 1978년생이니 새해들어 만 44세가 되었다. 비장애인 44세들은 명절이 되면 무엇을 할까? 아마도 가족을 만나고, 친척집에도 방문하겠지. 하지만, 화섭씨는 한번도 친적집에 방문한 적이 없다. 집에 친척들이 찾아와도 자기 방에 있었다. 혹은 그 전에 집을 나가 있었다.


요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들을 본다. 그들은 자녀의 장애에 대해 공부하고, 힘들어도 자녀와 놀아준다. 지인 중 한 아버지는 자폐 아들을 데리고 약수터를 정기적으로 데려 간단다. 그곳을 찾는 어르신들께도 인사를 시킨다. 그 자녀는 장애는 있지만, 그 나름대로 사회성이 있다.


반면, 내동생의 아버지는 갑자기 화를 잘 내셨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잘 싸웠다. 우리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렸던 기억은 희미하다. 동생의 장애를 잘 이해 못했다. 동생은 언제 시한폭탄처럼 화를 낼지 모르는 아버지가 옆에 있으니, 자신을 보호하고자 자기 방에 숨었다. 다행인건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혼자 노는 법도 알고 있었다.


집안의 결혼식이 있을때 동생은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다. 동생은 많은 친척들과 하객들을 불안해 했다.난 동생 손을 잡고, 간신히 사진을 찍거나 미리 음식만 먹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 광경을 보는 나는 마음이 참 아팠다. 때로는 동생을 배려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자녀를 잘 돌보는 요새 아버지들을 보면 때로는 질투가 났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도 장애, 결핍, 사연이 있을테지. 이런건 어쩌면 나와 동생의 운명일수도 있지. 그건 다 과거의 이야기지. 중요한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는거지.




난 꾸준히 동생과 사회를 연결할 고리를 찾았다. 비장애인도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있다. 대화를 자연스레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때, 취미나 관심거리나 날씨 등의 공통 화제를 매개체로 한다. 화섭씨도 그런 매개체를 보유하고 있다면,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동안 찾은 연결고리는 다음과 같다.


1. 가전제품

2. 보이차 같이 마시기

 (화섭씨는 섬세해서 차를 우리고 잔에 따라주는 팽주를 잘한다. 교육시키고 차방도 때로는 데리고 다녔음)

3. 보드게임


마침 첫번째 연결고리로 사촌 J와 연결되었다. 화섭씨가 당첨된 공기청정기를 J가 받은것이다. J네 집에 설치된걸 보러 가자고 동생에게 말했다.공기청정기를 보고 싶은 동생은 평소와 다르게 가자고 했다.


설 연휴 마지막날, 사촌네 방문했다. 바로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방으로 사촌이 안내했다. 사촌 형부가 나와 공기청정기 작동 스위치를 보여준다. 신기해 하며 보는 동생.



동생은 다른 방도 돌아다닌다.  집에 다른 공기청정기도 있다. 도합 세 대다.  이야기 하며 동생은 신기해한다.


사촌은 중국요리를 시켜주었다.  상을 펴고 거실에서 같이 먹다 갑자기 그릇을 들고 동생은 부엌 구석 식탁으로 간다. 이제야 낯설음이 올라오나 보다. 사촌은 다른 음식도 가져다 줄까하고 있는 그대로 배려한다. 동생이 동생식대로 있으면 된다. 예의보다 존재의 방식이 중요하다.


식사를 한 후, 나는 동생이 차를 잘 우린다고 알려준다. 그 집에 보이차 차방이 설치되어 있다. 동생에게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 해보라고 라니 그 자리에 턱 하고 잘 우린다. 조심스레 뜨거운 물을 다루고 차를 우린다.


사촌 형부에게 오늘이 역사적인 날이라 했다. 화섭씨가 처음으로 친척집을 방문한 날이라고 했다. 야~ 그래요? 하며 기념 사진을 형부는 찍어줬다.



우리는 차탁에 모여들어 동생과 이야기를 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주제로. 교통카드 이벤트 당첨을 위해 휴일에도 버스를 탄다는 이야기. 지하철로 다 가도 되는걸 버스를 탄다는 이야기. 이렇게 버스를 많이 타니 버스 타는 횟수가 높아 매년 당첨된다는 이야기. 그 노력에 때로는 감탄하며 동생 이야기를 들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촌에게 톡이 왔다.


“오늘 화섭이가 성장한게 보여 기특했어. 좋은 시간 이었어.”


오늘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하고, 노력 했는지. 갑자기 우리 가족이 보낸 시간들이 생각났다. 눈물도 났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의 시작이다. 있는그대로 존중받고 존재할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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