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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by 주드 Mar 29. 2025


얼마 전 대학 여자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20살,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다. 여고생처럼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첫 미팅에 같이 나가 뚝딱거리며 찌질하게 연애를 해보고, 춘천 기차 여행을 하고, 에버랜드에서 물놀이도 하고, 강화도에서 조개구이를 처음 구워 먹었던 날들. 모든 게 처음이고, 그래서 더 즐겁고 신기했던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달라져 있었다. 순진한 여대생이었던 우리는 사회라는 곳에서 각자 생채기를 입고 있었다. 한 친구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사내 정치에 휘말려 권고사직을 당했고, 나 역시 회사의 이해관계 속에서 버티다 퇴사를 결정했다. 박사과정을 마친 또 다른 친구는 10년 만에 정규직 출근을 앞두고 있었지만 출근 전부터 상사에게 받은 불쾌한 메시지에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쳐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고 여전히 서로에게 무해한 존재로 남아있음에 위안을 받았다.


회사에서 10년 이상 지내며 인간의 다양한 면을 봤다. 내가 믿고 있던 ‘대화와 타협’은 거의 없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익 앞에서 달라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직급을 앞세워 후배를 억압하고, 본인의 성과만을 위해 타인의 성장은 외면하는 사람들. 그런 상사라도 결국 몇 년 연속 최우수 고과를 독식하고, 그 아래 직원은 세 명 연속 퇴사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타인을 모함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어가며 승승장구했다. 리더십 다면진단에서 부하직원들이 정량적, 정성적으로 고통을 호소해도 상사의 기대치를 충족했다는 이유 하나로 승진했다.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든 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일련의 과정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런 일들은 대개 조용히, 물밑에서 누군가의 주도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좋은 사람인 척, 피해자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당한 절차나 열린 대화도 없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조직생활'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나는 점점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성악설’은 극단적인 주장 같았는데 지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됐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아파트를 산다고 해서 그 집이 ‘팔리는 집’은 아니었다. ‘남들이 원하는 집’이 잘 팔리고 값이 오르는 집이기에 이를 알아야 했고, 그래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공부하게 됐다. 한강변, 대형 브랜드 아파트, 균질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학군, 듣기만 해도 소득 수준이 그려지는 동네… 임장 스터디에선 스타벅스와 이마트 위치를 표시하고, 학교의 학업 성취도를 체크하고, 놀이터 바닥이 모래인지 우레탄인지 따져본다. 임대 세대수까지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결국 ‘안정’과 ‘상대적 우위’를 추구하고 있음을 느꼈다.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부동산이라는 현실 속에서 아주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좇는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본 유튜브 영상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던졌다. 왜 자본주의는 살아남고, 사회주의는 무너졌을까.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과 가장 잘 맞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했고 오히려 활용했다. 그 덕에 성장과 발전이 가능했고, 모두가 평등하게 일하고 똑같이 분배받는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났기에 실패했다는 해석이었다.


회사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퇴사한 후 나는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문학 속에서나 보던 시기, 질투, 이기심, 탐욕 같은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인간의 선한 모습은 어쩌면 모두가 애써 유지해 온 ‘가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입사를 위해 진행하는 인성검사에서 나는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이다.'같은 물음에 '그렇다'로 체크했다가 '아니다'로 최종 수정을 하면서 무엇이 정답일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으려 한다. 적어도 나는 지금 인간과 세상을 좀 더 진짜에 가깝게 이해해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는 나도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한 발 제대로 디디고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좀 더 똑바로 바라보려 한다. 이해가 먼저일지 단념이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작은 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행복에 가깝게 데려다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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