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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AWRIKER Oct 27. 2020

사과의 기술

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7.

"아니, 차장님! 이렇게 처리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건 규정을 어기시는 거잖아요. 차라리 업무 담당자인 제게 미리 이야기라도 해주시던가요. 이렇게 저질러 놓고 뒷감당은 누가 하라는 겁니까?"


"뭐라고? 이게 오냐오냐 했더니만... 네가 큰소리 치면 어쩔 건데? 지금 나를 혼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대화가 다소 격해지긴 했지만 업무담당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아니,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사의 감정적인 반응을 보는 순간 속으로 '아차!' 싶었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버릇없이 대들었다는 소문이 나지나 않을까?'


회사에서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고, 좋지 않은 말은 다른 사람의 입을 거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상사에게 버릇없이 행동했다는 잘못, 그 잘못으로 인해 벌어질 불편함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나는 그에게 먼저 사과했다.

충분히 예의를 갖춰 과오에 대해 시인하고 인정했다.

향후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의 사과는 신속했고, 또한 정중했다.


사과의 효과는 의외로 컸다.

사과를 받은 상사가 되려 나에게 사과하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정작 일을 잘못한 건 본인인데 사과를 받는 입장이 되어버리자 묵혀둔 죄책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내가 구사한 사과의 기술은 완벽히 성공했다.




한 번은 같은 팀 상사와 늦게까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평소 꽤나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어쩐지 상사가 과음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술에 의해 자기 통제력을 상실했고,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주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는 '말'을 통해 자신의 속물근성을 쏟아내는 부류였다.

그가 아무렇게나 뱉어낸 '말'은 지독했고, 또한 잔인했다.


다음날, 내 눈치를 살피듯 한참을 뜸 들이다

"잠깐 커피나 한잔 할까?"라며 나를 불러낸다.

아마도 사과를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의 눈빛과 말투, 행동...

그 어디에서도 사과에 대한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태도가 애써 눌러 놓은 지난밤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상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잘못, 그 잘못으로 인해 벌어질 불편함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줬다.




사과는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며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다.

상대에게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몸을 낮추어 마음을 얻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사과에도 기술이 있을까만은 적어도 이런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사과라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정을 한 상사는 내가 당연히 본인의 사과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무례한 사과를 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가 구사했던 사과의 기술은 완벽하게 실패했고, 그 이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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