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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AWRIKER Oct 29. 2020

보통날의 휴가

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17.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에서 일어났다.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던 알람이 오늘은 울리지 않아서였겠지...

출출한 기분에 대충 차려 입고,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매장에는 이미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깔끔한 오피스룩의 회사원들 사이에서 슬리퍼에 추리닝 바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의 내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다.


꽤 긴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주문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다시 밖으로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길에는 한창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며 마치 규정된 방향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도로를 질주하는 역주행 차량처럼 이상하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들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창나이에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이나 축내는 백수(白手) 같아 보이지 않았을까?




가끔, 특별한 계획도 없이 휴가를 사용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방구석에서 내내 뒹굴 거리다 느지막이 외출을 했는데, 저마다의 일상 속에서 바쁜 오늘을 살고 있는 군중 틈에 끼어 있다 보면 왠지 낯선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쓸쓸해 지곤 했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오늘 점심은 어떤 메뉴를 골랐을까?'

'지금쯤이면 슬슬 퇴근을 준비할 시간이네.'

출근을 했다면 가능했을 회사에서의 일상을 현재에 오버랩시키기도 했다.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답답한 사무실 공기도,

귓가에 들리던 상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던 신경질적인 전화벨 소리도,

야근을 해도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산더미 같은 업무들도,

차라리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게 나을 것 같은 벽창호 팀장의 얼굴도...

오늘만큼은 '안녕'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기에 어떠한 부담도 없는 오늘 하루는 온전한 내 소유다.




평일 오전 TV에도 제법 볼만한 방송들로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일 낮의 여유가 이토록 사랑스러우며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란...

공기마저 포근하고 따사롭다.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을 편하게 보내고 맞이하는 평일 저녁은 또 왜 이리도 감성적이고, 낭만적인지...

웃음만  나온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침대로 들어가 달콤한 잠에 빠져들며 그렇게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온종일 갑갑한 사무실에 틀어박혀, 조그마한 모니터 속 숫자와 텍스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을 때에도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언제나처럼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온전한 시간 속에서 찬란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터였다.




앞으로도 종종 아무런 계획이 없는 즉흥적인 휴가를 써보기로 했다.


분주하고 빡빡한 일상 속이지만, 이따금씩 허락될 보통날의 여유로움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는 나에게 분명 기적과 같은 하루를 선사해줄 것임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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