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16.
요즘 방송가에는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는 관찰 예능이 인기다.
그중에서도 유명인으로서 대중에 노출되는 공적인 일상(On)과 한 개인으로서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Off)을 함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은 관심 속에 방영되고 있다.
마치 전원 스위치를 "딸깍" 올리고 내리듯 바쁜 일상의 'On 모드'와 오직 나를 위한 'Off 모드'를 껐다-켰다 하는 구성이 참 흥미롭다.
최근에는 화제가 된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여배우의 일상이 공개되었는데, 그녀의 주업인 연기자로서의 일상 외에도 부업인 요가강사로서의 일상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삶이 'Off' 된다면 계속 오디션을 준비하며 배우로서의 'On'을 기다리기보다, 'Off' 상태에서도 자신이 해오던 일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온전한 생(生) 관점에서의 'On'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때는 야근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그러다가도 종종 일찍 퇴근하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일찍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도 딱히 할 게 없었다.
소파에 널브러져 TV를 보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회사원이라는 'On'에 맞춰 살다 보니 퇴근 후 'Off' 상태가 되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정신없이 바쁜 'On'일 때는 여유가 넘치는 'Off'를 기다리다가도, 정작 'Off'가 되어버리면 다시 'On'이 되기를 기다리며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소모해 버리는 삶의 이중성 앞에서 스스로의 삶조차 제대로 주관하지 못하는 무력감이 허탈하게 나를 감싼다.
'On'이든 'Off'든 모두가 소중한 삶의 부분이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일상이었음에도 스스로가 세워둔 이중적 잣대에 기대어 각기 다른 삶의 태도를 적용하였다.
그 결과 'On'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한 'Off' 상태가 되었을 때 삶에 대한 자세 역시 적당히 생존을 위한 체제로 바뀌었다.
'Off'라는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었고, 쓸모없는 시간이었으며,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보내도 아무렇지 않은 그저 그런 시간이었다.
물론 삶에서 'On'과 'Off'를 동일선상에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평생을 'On'인 상태로만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없듯, 'Off'를 배제한 채 온전한 의미로서의 삶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사실 'On'과 'Off'는 '일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존하는 삶의 두 얼굴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런 지루한 멜로디와 같이...
과거 옛 성인(聖人)은
"언제 어디서나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라고 말하며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무엇이 'On'이고, 또 무엇이 'Off'인가?
중요한 건 'On'이냐 'Off'냐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에 충실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도 괜히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졌던 것이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삶의 두 모드(mode) 사이에서 문득,
배우 'On'은 없었던 것처럼 배우 'Off'의 삶도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TV 화면 속 어느 여배우의 일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