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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ug 22. 2020

난생 처음 '출판사 미팅'

그림을 더 그릴까? 글을 좀 더 쓸까?






출판사에서 처음 연락 오고 난 일주일여 뒤,

나는 처음으로 편집자님과 미팅을 갖게 되었다. 교사 외의 신분으로 누군가와 비즈니스 미팅을 한 적은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아마추어의 패기(?)를 방패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그 날은 휴가를 떠나기로 한 첫날이었기 때문에, 미팅을 한 직후 여행을 바로 떠나야 했다. 고로, 나는 삼박 사 일간의 짐을 낑낑 싸매고 미팅 장소로 향해야만 했던 것이다. 커다란 짐과 함께 미팅을 한다니. 상상만 해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라. 짐을 어디 맡길 데 없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 맡기러 가려는 발걸음 조차 쉽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조금 일찌감치 도착해서 한 보따리나 되는 큰 짐을 어디론가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편집장님과 만나기로 한 곳은 내게 가장 익숙한 장소 중 하나인 '카페'였다. (테이블  정도에는 숨길  있겠지..)









 일찍 나오고자 다짐했건만, 생각보다 그리 일찍 나오진 못했다. 한 시간여쯤 일찍 도착해서 마음가짐을 가다듬으려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삼십 분 정도를 남기고 도착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목을 축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편집장님을 만나면 무슨 얘길 할까, 나는 그 흔한 명함조차 없어서 주고받을 게 없는데. 그리고 원고에 대한 내용은 출간 기획서에 이미 꼼꼼하게 작성을 했는데, 덧붙일 말이 무엇이 있을까. 중요한 일 직전에 리마인드를 수차례 하는 버릇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햇병아리 교생일 때, 공개 수업하기 직전에는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까지 했었고, 임용고사 면접 직전에도 그동안 외웠던 교육적 가치관이나 현행 교육정책 같은 것들을 유려하게 말하는 연습을 수차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예상문제집이 없는 시험에 뛰어드는 느낌이 역력해서 리마인드조차 하기 힘들었다. 내가 편집장이라면 나에게 무엇이 궁금할까? 면접도 아닌데,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여러 번 하던 찰나,




나를 당황하게 한 강아지. 지금 보니 귀엽다.







 카페에 있던 큰 강아지가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다리를 핥았다.

나는 사실 강아지를 약간.. 아주 약간 무서워한다. 이 카페에 자유로운 영혼의 강아지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긴바지를 입었을까? 아무튼 강아지가 당황스러운 행동을 그 순간에, 화들짝 놀란다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큰 액션을 취하면 불상사가 일어날 것임을 알기에 나는 애써 가만히 있었다. 강아지는 내 마음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내 냄새(혹은 향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옆에서 웅크리고 앉았으니까. 이 자리에서 미팅을 할 요량으로 내 대빵 큰 짐을 테이블 밑에 숨겨놓았는데, 강아지가 다가와서 조금은 곤란해진 것이다.





강아지 앞에서 끄적거림.




 이 일을 어찌하면 좋지? 조금 고민하고 있던 찰나, 편집장님이 카페에 도착하셨다. 내가 이십 분가량을 기다리긴 했지만, 편집장님께서도 십 분이나 일찍 온 것이니 참 부지런하신 분이다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악수를 받았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편집장님께서는 명함을 내미셨고, 나는 드릴 게 없어 민망하다는 말씀으로 명함을 대신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크디큰 강아지의 형체에, 우리는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내 굉장히 큰 짐도 들킬 수밖에 없었다...




 내 큰 짐을 들키면 대단히 민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휴가 직전에 자신이 감히 미팅을 잡은 것이냐며, 너무나 미안하다고 하는 편집장님의 해사한 미소를 바라보니 민망함은 간곳없이 깨끗하게 씻겨졌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여서 놀랐다는 칭찬과- 생각하시는 것만큼 어리진 않을 거라는 농담이 오가며 딱딱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첫 '비즈니스 미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아닌 다른 직업인의 입장에서 공적인 미팅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그러고보니 학부모상담을 처음 했던 풋내기 신규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교생시절에 선배 교사들께 이래저래 얻은 조언과, 선생님들끼리 자료를 공유하는 싸이트에서 얻은 교우관계조사 자료 파일을 잔뜩 쌓아놓고 상담을 시작하던 그 시절 말이다. 지금의 나도 그리 나이가 많지 않지만 그 때의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에 불과해서, 어른들을 대할 줄 모르던 때였다. 그래도 나는 교육 전문가니까 기죽지말자! 속으로 세 번 외치고 상담에 임했지만, 학부모 상담에서 필요한건 '교육전문가적 자질'이나 '교육 상담 지식'이 아니라, 그냥 '리액션 스킬'이었다. 왜냐하면, 1년차에 겪은 학부모 상담 때



"필독 도서 목록은 대체 뭘 기준으로 작성된거죠?"


취조하듯이 필독도서들의 개연성을 캐물은 양복을 빼입고 교실에 나타난 아버님도 있었고,



"제가 정말 힘들게 가진 아이거든요 …."


아이를 출산한 지 십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그 때의 고생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어머님도 계셨고,



"선생님, 제가 OO 갤러리에서 OO전시를 수차례 열었는데, 글쎄 그 때 당시 대통령이 찾아오셔서 …." 



도무지 아이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게 본인 자랑만 듬뿍 하고 가신 학부모님도 계셨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예상치 못한 학부모 상담을 끝내고 나면 나는 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머릿속으로 복기를 수천번하곤 했는데, 뒤탈이 전혀 없었던 것을 보니 당시의 내 대처가 나쁘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 얼렁뚱땅 서툴었던 그 때의 나도 '공감 능력' 하나만으로 학부모 상담 어째어째 겪어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거야.









 편집장님은 내 글을 처음 본 순간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시며 말문을 열었다. 여느 출판사가 그렇듯, 이 출판사 역시 아이들을 위한 시리즈물을 출간하고 있는데, 후속작을 고민하던 찰나, 그 시리즈에 적합한 소재와 내용이 나와서 운명인 것처럼 느끼셨다고. 다만 그 시리즈물의 규격과 분량이 정해져 있어서, 내가 애초에 투고했던 원고의 길이는 그에 비해 짧아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완성이 되면 애초에 내가 기획했던 '단편 그림책'이 아닌, '중편 그림책'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출산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만큼 인고의 시간을 거쳐, 발상의 총체의 최대치를 뽑아낸 결과물이기도 하니, 작품은 자식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 '자식'의 분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실례가 될 수도 있어, 이런 말씀을 건네기 다소 조심스럽다는 말씀을 편집장님은 덧붙이셨다. 듣고 있는 초보 작가는 오로지 '내 책이 중편이 된다니!'라는 들뜸에 사로잡히고 있었는데도!


 어렸을 때의 나는 읽던 책을 읽고 또 읽는걸 정말 좋아했었는데, 그때 줄곧 읽었던 '내 친구 상하'나 '아나스타샤 시리즈', '재클린 윌슨 전집'은 아직도 책장에서 버리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편 그림책'이 아닌 '중장 편 그림책'. 그런 책을 동경하며 마르고 닳도록 읽고 자란 나의 출간 최종 목표는 '중장 편 그림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단편이 아닌 중장 편을 제안하신다면, 나는 그야말로 땡큐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출간 최종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아서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는 의사를 밝혔다. 편집장님은 작가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너무나 다행이라며, 참고가 될만한 책 두 권을 선물해주셨다. 그리고 분량을 늘릴 때 주의해야 할 점, 특히 더 섬세하게 쓰면 좋을만한 구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낳은 자식에 대해 학부모 상담을 하는 학부모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내 작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는 그 시간은 나에게 출간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감을 가득 채워주었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나에게는 은혜로운 시간들이었다.









 편집장님과의 유쾌한 첫 번째 비즈니스 미팅이 끝나고, (휴가를 맞이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였다. 낯선 번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택배 전화인가 싶었는데, 문자를 보니 일전에 피드백을 주었던 그 출판사의 연락이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출판사의 연락이었는데, 이미 다른 출판사와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가 잘 진행된 직후라 콜백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전화가 울려 냉큼 받았다. 이야기의 요는, 수정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출판을 진행하고 싶고, 출판을 진행할 경우에는 일러스트를 함께 그려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방금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눈 출판사와는 일러스트 작가를 따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는데, 그러다 보니 두 출판사의 출판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게 되었다. 일단 긍정적인 답변을 주셔서 감사하고, 고민하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린 뒤 전화를 끊었다.


 글을 더 쓰느냐, 그림을 그려 온전한 내 그림책을 만드느냐,

기로에 서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지만, 낯선 곳을 향하는 휴가가 조금은 해결해주지 않을까, 근사한 기대를 하며 서울을 떠났다. 미팅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몸과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설렘은 조금은 뭉클했고, 유례없는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복잡함 정도는 가뿐히 이겨내는 신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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