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고 하기엔 글을 쓰고는 있고
철옹성 같던 그 꿈은, 장장 12년에 걸친 학업 기간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았고 덕분에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우여곡절 끝에 갖게 되었다. 너무나 오랜 기간 갖고 있던 꿈이었던 나머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훤히 알고 있었는데, 특히 '무엇이 너를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게 했냐'는 질문은 그들에게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대답 매뉴얼을 정하는 것이 편했다.
1. 선생님들이 자신만의 교실을 갖는 게 좋아 보여서.
(고로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무조건 탈락이었다.)
(특히 중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후안무치한 행동들을 목도하면서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택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2. 엄마가 공부를 잘해야만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에는 영 승부욕이 없었는데, 공부만큼은 꼭 잘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별다른 학력이 필요 없는 직업이었다면 선생님을 꿈꾸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3. 작가 겸직이 가능해서.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3번과 관련이 아주 깊은데, 아직까지도 내가 그 타이틀을 갖춰도 되는가 하는 벙벙함은 덤으로 갖고 있다.
생각하기도 민망하기도 한 것이, 나는 원고를 쓰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호된 깨달음 때문이었다.
지난 3개월간 동화 원고 집필을 하면서, 솔직히 행복한 순간만 있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보자. 기쁨보다는 힘듦이 훨씬 컸다.
선생님일을 하면서는 가끔 힘들긴 해도, 참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글쓰기라는 일은 상대적으로 나에게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독립출판이나 자비출판이라면 원고 교정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냥 내 마음대로 쓰면 되는 것을.
하지만 기획출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출판사와 의견을 조율해서, 원고 교정 과정을 어느 정도는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분량을 이 정도로 늘렸으면/줄였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애초에 첫 원고에 대한 계약 얘기가 오갔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그림을 더 하느냐, 글을 더 하느냐. 개인적으로 그림보다는 글에 더 친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당연히 글을 선택했는데, 글쎄 그게 아주 고생길이었다. 혹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분량을 '늘리는' 것보다는 '줄이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직 아마추어인 나에게는 '글을 늘린다는 것'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따로 글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지 (논술을 배운 적은 있어도, 문학이나 동화를 쓰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글이 길어질수록 구성이나 장치에 빈틈이 많이 생겼고, 내가 생각해도 이 글이 과연 세상 밖에 나올 수는 있을까 싶었던 순간들이 숱하게 생겼다.
그 와중에 무슨 정신으로 두 번째 작품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두 번째 작품도 감사하게 또 다른 출판사와 계약 얘기가 오가게 되었다. 어쩌면, 그 출판사에서 받은 폭풍 칭찬 덕분에 내가 아직까지 첫 번째 원고를 놓고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장님 감사해요..)
결론은, 나는 지금 두 가지 동화책에 관한 원고를 쓰고 있고, 고통스러운 교정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두 번째 직업이지만, 오히려 첫 번째 직업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세상의 온갖 쓴 맛은 다 느끼고 있는 기분. 다른 작가분들도 글을 쓸 때 나와 같은 고통을 느낄까? 아니면 아직 내 역량이 한참 부족한 걸까? 끊임없이 의문이 드는 2020년의 가을날. 이 세상 모든 작가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