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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Nov 20. 2020

네? 제 원고가 재미없다고요?

재미를 원한다면, '학교'를 버려라.




그림 대신 글의 분량을 늘리기를 선택한 , 내가 창작이라는 것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내가 써놓은 글의 부피만 불리면 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건 초보 작가의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출판사는 원래 투고를 했던 글 분량의 세 배 정도 되는 글을 원했다. 나는 '나의 시놉대로 흘러가면, 살만 붙이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글 수정본을 메일로 드렸다. 그리고, 말 그대로 '대차게' 까였다.



까인 이유는 한 마디로 축약해서,


재미가 '더럽게' 없다


는 것이다.


편집 팀장님은 돌려 돌려 완곡하게 말씀하셨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52줄짜리의 글을 원고지 100매 정도의 분량으로 단순히 뻥 튀겨 놨으니, 이야기가 지루하고 진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히 나에게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피드백이었기에, 난생처음 받아보는 혹평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매거진의 지난 글은, 그렇게 편집 팀장님께 대차게 까이고 난 뒤 집에 돌아와서 슬픈 마음으로 쓴 글이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내 원고는 무사히 탈고되어,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고, 지금은 그림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바로 전 문단과 너무나 대조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보시는 분들도 상당히 당황할 것 같은 이야기 전개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한없이 바닥 쳤던 작가로서의 내 자존감을 멱살 잡고 끌어올릴 방도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대신, 내가 소위 말하는, '재미있는' 원고를 쓰기 위해 지켜야 했던 수칙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어이없었던 명제가,

제발 학교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365일 중 192일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나머지 날들도 학교에 얽매이지 않은 순간이 없는 나를 보고, 학교를 버리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따로 없었다. 그렇지만 편집 팀장님은 내 글에서는, 선생님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즉,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어른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학교, 그것도 초등학교가 배경이 되는 이상, 나는 필연적으로 글 안의 선생님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겪은 학교에서의 소동, 그 안에서의 아이들의 감정, 문제 해결 방식 등. 내가 옳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다 보니 나는 어느새 동화작가가 아닌 선생님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학교를 버려야 했다.














공간적 배경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것은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 쓴다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나는 풀이 죽었다. 역시 나에게 출간은 무리였나. 글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선뜻 창작물에 손을 댄 것부터가 말도 안 되지. 나는 어쩔 수 없는 패배감에 젖어 개고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고로 몇 주씩이나 노트북에 있는 '원고' 속 파일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나의 첫 번째 계약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했을 때쯤, 나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철저한 계획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추진력 있게 해내지 않는 내가,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벌떡 일어나 글을 '그냥 써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정확히 언제, 어느 시점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침대에 누워있다가, 한 문장이라도 써볼까? 싶어서 처음부터 써 내려간 것이 몇 시간을 노트북 앞에 앉아있게 했다. 한 번 시작한 글은 멈출 수가 없었고, 어느새 내 동화 속 주인공은 머릿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편집 팀장님께 수정본 이메일을 보내고야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 없는' 일이라, 보내고 나서 멍했다. 이렇게 한 순간의 직관에 이끌려 무언가를 완성한 적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몇 번이고 더 검토했어야 했는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뒤늦게 뉘우쳐봐야 소용없었다. 수신 확인 속 읽음 표시에 따르면, 이미 편집 팀장님은 글을 읽으셨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에 다시 드러누워버렸다.

만약 이 원고도 별로면 어쩌지. 계약을 무르시겠지? 첫 계약부터 이렇게 어그러졌는데, 다른 계약은 과연 무사히 진행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들과 걱정들에 휩싸여 고민의 늪을 유영하고 있을 때, '띠링-'하는 이메일 알림음이 들려왔다. 편집 팀장님께 회신이 온 것이다.




왜 답신이 벌써 왔지? 내가 공상을 너무 오래 했나? 시간을 들여다보니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걱정 반, 설렘 반의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해보았다. 두근두근, 서프라이즈! 메일 안 빼곡한 글자 속에는,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긍정적인 피드백이 들어 있었다. 편집 팀장님은  개고 한 내 글을 보고 '이거지!'라고 무릎을 치셨고, 이 원고라면 재미있게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고, 그러니까 그림 작가 선정과 추후 일정을 위한 미팅을 어서 잡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얼떨떨했다. 여느 작가나 받아봤을 그 말들이,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감히 꿈에서도 그리지 못한 엄청난 찬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 있는 첫 번째 출간의 과정은, 분명 아무나 겪지 못한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러니까, 애써 긍정적으로 '특별하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출간 과정에서 나처럼 편집 팀장님께 합평받고, 깨지고, 우울해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했던- 인고의 과정까지 녹아드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란 말이다. 애초에 투고하고 계약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원고가 보장되어있는 상태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나는 그것 없이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시작했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당최 나의 어떤 점을 보시고 계약을 덜컥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에게는 참 고맙고, 어렵다가, 또 고마운, 그런 시간들을 겨우겨우 겪어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간들은 나에게 난생처음 '직관적으로 그냥 해보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경이롭지만 어이없게도 피와 살이 되어 두 번째 원고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향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글을 지속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갖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재능이 있는 걸까? 내가 쓴 글이 괜찮은 글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평생토록 데려가야 하는 숙명을, 기꺼이 지고 싶어 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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