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도 있고, 새로 만난 친구도 있었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 나의 탈혼은 친구들에게 각자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주는 거 같았다.
미혼_불안한 떨림이 좋았다.
"언니, 나는 언니 부부만큼은 행복한 줄 알았어. 행복하게 끝까지 잘 살 줄 알았어"
이 얘기에 처음에는 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말처럼 들려서 속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나도 행복했다고. 끝까지 갈 줄 알았지. 속에서 자기 방어적인 말이 올라왔다. 그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였다.
"결혼해서 살아 봐"
무슨 말을 더 하랴. 동생은 불안한 거다. 자기가 앞으로 하게 될 결혼의 이면을. 어쩌면 자기에게도 벌어질지 모르는 이혼이라는 원하지 않는 결론이 자기에게도 현실이 될 것 같은. 자기 불안의 표현인 것을. 거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다. 아니야 넌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 거야 라는 말도. 이혼 별 거 아냐, 하나의 경험이야. 하고 무심히 얘기하기에도 무엇도 그 친구에게는 진실로 다가가지 않을 것을.자기 삶으로 살아내는 수 밖에는 없다. 동생의 불안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런 조심스러운 진중함을 간직하고 자기 길을 간다면. 나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비혼_그들의 허그가 좋았다.
내 주변에는 비혼 친구들이 꽤 많다. 이 친구들은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든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어서 와~ 넌 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더라. 그래도 연애는 해라 이것아. 자, 너를 위한 소개팅 리스트란다"
워낙에 오래된 친구들이라 허물이 없어서 이기도 하고, 실제로 자기 가치관대로 흔들림 없이 살고 있는 친구들이라 나의 탈혼 소식을 옆 집 개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라 강아지 실종 사건이 더 큰일이 될 지경이었다. 이 친구들에게 나의 탈혼은 그들의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세워주는 거 같았다. 역시 결혼은 할 것이 못 돼. 정서적 유대감은 반려동물과 육체적 욕구의 해소는 종류별로 기능도 다양한 토이들이 풀어줄 터. 물론 그중에는 오래된 연인과 동거하며 아주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친구들의 반응은 캐주얼한 연애나 그 마저도 포기한 친구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내가 영혼의 짝을 떠나보낸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었다. 그들의 허그가 좋았다.
기혼_그들과 나의 성찰이 좋았다.
기혼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어떻게 '탈혼에 성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난 이들의 반응이 가장 흥미로웠다.
"잘했어요. 서로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지. 요즘은 헤어질 수 있으니까 한다더라. 나도 꿈만 꾸고 살아요"
희극이든, 촌극이든, 비극이든 결혼이라는 드라마를 잘 알고 있는 기혼들에게 요즘은 탈혼이 "금기"에서 "꿈" 또는 가능한 선택지로 변하고 있는 거 같았다. 백년해로의 이상과 신화는 깨진 지 이미 오래고, 주변에 이혼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되는지라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인데, 다만, '저 사람이 이혼한다고?'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흥미로움이 더해지는 거 같다.
그리고 아주 잠깐 자기의 결혼을 돌아본다. 나도 이혼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지 암. 그러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직은...... 결혼을 유지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우리는 서로 사랑해(감정적 유대감), 만약 하게 되면 재산분할이 어떻게 되지?(경제적인 결속), 우리가 이혼하면 우리 도치는?(아이), 친구들에게 뭐라고 하지? 회사는? 교회에는?(사회적 지위), 혼자 사는 여자라고 깔보고 희롱하고 무례하게 굴진 않을까?(세간의 이목과 평판), 나에겐 꿈이 있잖아 이혼녀라는 딱지가 마이너스로 작용하진 않을까?(미래 비전) 등등 다양한 이유들에 나래비를 세우며 아직 내 결혼은 성립할 만 한지, 또는 나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거 같았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피하지 않았다. 결혼의 꿈을 간직한 미혼들보다 대화가 훨씬 잘 통했다. 그리고 나는 왜 저 많은 변수들을 재고 따지지 않았을까? 먼저 몇 가지 상황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그것들 대부분이 기혼자들에게는 현재 시점에서 결혼을 유지하는 큰 버팀목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했다. 나는 그들과 나의 성찰이 좋았다.
돌싱_한 번의 만남으로 통하다
협의 이혼 날, 같은 법원에서 만났던 직장동료와 연락하여 따로 사석에서 만났다. 탈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 과정은 어떤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우리를 가장 흥분시키고 즐겁게 했던 점은 어떻게 같은 날 법원에서 만났냐는 부분이었다. 탈혼을 결심한 사유와 과정은 좀 달랐다. 그 사람은 비교적 결혼 초기에 서로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부부로서 기대했던 감정이 빠르게 식었다고 했다. 나머지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결혼을 유지해보다 1년 전에 상담을 받고 이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나와 비슷하게 부부가 경제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협의 이혼 신청서를 내고, 한 달의 숙려 기간을 거친 뒤,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 뒤로 일정 기간 이내 구청에 이혼신고만 하면 가족관계도 정리가 될 것이다. 우리의 대화 분위기는 대체로 편안하고 차분했다. 그 뒤로 그분을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알았다. 잘 지낼 것을. 그리고 우리의 공통분모인 탈혼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 우리가 만날 일은 이제 없을 거라는 것을. 이제 그 분과 나는 10년 이상을 알고 지낸 옆 팀 동료보다는 같은 날 이혼한 직장동료로의 인식이 더 커져 버렸고 우리의 만남은 우리의 이혼을 떠올렸기에.
내 인생이니까
나는 결혼 유무 또는 탈혼 여부를 밝혀야 할 때 망설이거나 숨기지 않았다. 내 인생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생각만큼 자유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뒷담화조차도 그렇다. 내 앞에서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 사람의 자유다. 때로 상대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깊은 편견을 드러낼 때, 그 말 한마디에 심장박동이 올라가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난감하고 모욕적인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내 안의 편견이 만든 생채기였다.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타인의 일상과 안위에 순간의 관심 이상을 깊이 쏟지 않는다. 아직 면전에서 대 놓고 비난하거나 낙인을 찍은 사람은 없었지만 이런 경우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브라만을 찾아갔을 때의 일화가 큰 깨달음을 준다.** '어떤 사람이 내 면전에서 욕을 선물했을 때,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되나요? 바로 욕을 한 그 사람의 것이 되지요" 이 가르침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리라.
**이 일화는 다음 블로그에서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원 출처는 법륜스님의 책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