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교감
“2020년 3월 1일 21시 17분 똘이 심정지로 사망했습니다.”
안락사를 집도했던 수의사의 낮은 목소리가 수술방 공기를 얼렸다. 똘이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생명의 빛이 없다. 나는 첫 번째 반려견 똘이의 영면을 오랫동안 준비했다. 16년 전, 동생이 지인으로부터 인계해 온 유기견은 자기 조상의 유전적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아 납작한 코와 툭 튀어나온 눈, 부정교합으로 불만 가득한 입매를 하고 있었다. 잘 다물어지지 않는 넙적한 입 사이로 침이 흘러내려 앞가슴을 적시곤 했다. 페키니즈와 시츄 혼종인 똘이는 꽤 어렸을 때 발병한 급성디스크염으로 사는 내내 병원치료를 하며 통증과 싸워야 했고, 그 때문인지 성격이 괴팍했다. 자주 이빨을 드러내고 난폭하게 굴었다. 똘이는 제 친구들 대비 큰 체격에 비해 몸이 많이 약했다. 잦은 병치레, 병원행, 약물투여,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개와의 약물범벅 싸움 속에 나는 자주 지쳤다.
병약한데 한량처럼 나른한 똘이의 몸짓에는 조선말기 개화기 시대의 모던 보이 같은 묘한 퇴폐미가 있었다. 연신 기침을 콜록이며 딴스홀을 기웃거리던 어느 문학청년처럼 똘이는 자주 바람이 살랑이는 베란다에서 맞은 편 건물 담을 타고 옆건물로 점프하는 길고양이의 기교를 감상하곤 했다. 그러다 바람이 살랑 불어 두툼한 목 갈기 털을 쓸어줄 때면 눈을 지그시 감곤 했는데. 그 광경은 사랑스러운 한 순간으로 내 의식 저편에 저장되어 있다.
말년엔 은둔자를 자처하며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는듯, 없는듯 지냈다. 은신처는 주로 쇼파 밑, 베란다 양파 저장상자, 신발장 밑이거나 화장실 변기와 벽 사이이기도 했다. 대부분 집안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 무렵 똘이는 사람의 손길과 관심을 극도로 피했다.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 같은 강아지. 강아지에게 기대하는 사랑스러움, 충성스러운, 협력적이고, 격려하는, 상호작용하는 매력을 똘이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고양이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집사들은 고양이에게 충성과 상호작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니가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떤 마음? 아마도 내가 널 이만큼 보살피고 아끼니, 너도 그래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똘이는 늘 멍하거나 뚱했다.
‘아이고 이 녀석 많이 힘들었겠네요.’ 똘이가 13살 되던 해,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온 몸에 털이 빠지고 피부가 까맣게 착색이 되었다. 동네 병원에서는 좀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볼 것을 권했다. 비용이 많이 들텐데. 돈문제로 망설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간 큰 병원에서 똘이는 쿠싱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이 질병은 부신피질 호르몬인 코티솔이 과다 분비되거나, 반대로 적정량보다 적게 분비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쿠싱증후군인 강아지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다고 한다. 대학수능시험을 한 달 앞둔 고3 수험생, 또는 경영진 앞에서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앞둔 직장인이 겪을 법한 압박감과 긴장감일까. 안타까움과 늦은 후회로 마음 깊은 곳이 뻐근했다. 좀더 일찍 병원에 올 걸.
얼마나 힘들까? 아픈 강아지인만큼 나는 ‘마지막’을 자주 떠올렸다. 잊을 만하면 생각해 내고, 잊을 만하면 생각해 냈다. 한 여름 보양식으로 북어국을 끓이고 매 년 임의로 정한 생일날엔 강아지 전용 케이크를 만들며 장례를 어떤 식으로 치뤄야 하나 고민했다. 어쩌면 이 보살핌의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던걸까. 똘이 말년에 마지막을 생각하며 자주 눈물바람을 하던 나는, 때로는 업무강도 대비 야박한 임금에 불만이 가득한 직장인처럼 퇴사를 꿈꾸듯, 마지막 안녕을 꿈꿨다.
2020.03.01 나의 퇴사보다 똘이와의 이별이 먼저였다. 마침내 그 날이 오자, 나는함께 한 시간의 무게에 횡경막을 들썩이며 울었다. 똘이가 노병사(老病死)의 숙명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새로 생기는 추억은 끝났다는 서글픔, 그리고 한 생명의 회귀 자체가 온 마음을 흔들었다. 그 안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마지막이 소리내 꺼냈다.
‘이제는 아프지 않겠구나. 나와 함께 해 줘 고마워. 너네들은 죽으면 강아지별에 간다고 하는데 그거 사실 암두 모르지. 그건 그냥 지어낸 말일꺼야.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그런 말로 위로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고, 그거 때문에 내가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어 그래서 기쁘고 또 다행이야. 너도 나도 조금은 편해지게 되어서. 다행이다. 안녕 잘 가. 나의 강아지 친구. 편히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