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탐닉하기

탈혼일기

by 김솔솔


탈혼 한 지 3년이 되어 간다. 외로움은 밀물과 썰물처럼 주기적으로 밀려오고 밀려갔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게 인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외로움은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정서 중에 하나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을 맞이해야 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때로는 직면하고,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허우적거리고, 때로는 그 안에서 나(사람)의 본질적인 측면을 탐구했다. 나날이 나는 나를 만났다. 그것이 성장이라거나, 퇴행이었다거나, 이도 저도 아닌 유보였다는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렇게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볼 뿐.


외로움을 직면하기


아침에 눈 떴을 때 외로움이 찾아왔는데, 그날이 주말이라면 직면하기 좋다. 그럴 때는 가만히 소리 내어 말해 본다. '아 내가 지금 외롭구나.' 그리고 몸의 감각을 깨워낸다. 눈을 몇 번 깜박이고 입술을 혀로 핥아 축이고, 두 팔을 들었다 툭, 떨어뜨린다. 두 다리도 마찬가지. 그래도 외로운지 묻는다 '너 지금 외롭니?', '응' 그래 외롭구나. 가만히 두 팔로 스스로를 꼭 안아준다. '그래 외롭구나' 토닥토닥도 몇 번. 왜 외로운지 같은 건 묻지 않는다. 왜 사냐고 묻는 것이 의미가 없듯,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이지, 꼭 살아야 할 어떤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살아도 된다.


외로움은 인간이기에 생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나 지금 왜 외롭지?'라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냥 외로운 거니까. 그렇게 나를 몇 번 안아주면 좀 효과가 있다. '그래 인간은 다 외로운 거야!' 마음이 상쾌해지고 뭔가를 할 의욕이 생긴다면 그 일을 하면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바로 외로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그럴 땐 외면 또는 우회의 방법으로 넘어간다.



외로움을 외면(우회)하기

가장 효과적인 건 '달달한 것 먹기' 나를 달래는 것, 정확하게는 내 뇌를 달래는 것이겠지. 뇌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단당류와 햇볕. 몇 가지 단당류 디저트들을 떠올려 본다. 생크림 딸기 케이크, 마들렌, 퐁당 쇼콜라, 아, 슈가코팅을 한 복숭아 안에 그릭요거트를 잔뜩 채운 복숭아 그릭모모는 어때? 무화과가 얹어진 뉴욕 치즈케이크는 어떻고? 과즙이 달콤하고 싱그럽게 입술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리면 츄릅 황급히 침을 삼키고, 손을 들어 끈적이는 과당을 손으로 훔쳐내는 거다. 한 입 듬뿍 먹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뇌는 신나서 어깨춤을 추고 있다. 좋아하는 디저트 카페들 중 제일 먼저 떠오른 곳으로 당장 달려간다.


굳이 머리를 감을 필요 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이나 선글라스로 무장한 뒤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고 나간다. 서둘러. 햇볕이 찬란한 날이면 더 좋다. 햇볕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 근사한 세로토닌을 생성해 줄 것이기 때문에 이미 외로움의 절반 정도는 사라졌다. 마침내 카페에 도착했을 때 구석진 자리에 앉아 홀 쪽을 바라보며, 숨을 필요는 없으니까. 사랑하는 단당류 디저트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일시적이지만 효과는 분명 있다.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어느새 외로움은 사라지고 없다.


그밖에 효과가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외로움을 우회해 가기 좋은 방법들>
1. 단당류 디저트 먹기
2. 혼자 걷기
3. 반려동물과 산책하기 (없으면 패스)
4. 운동하기(평소 좋아하는, 요가, 필라테스, 등등)
5. 청소하기
6. 드라이브하기 (아무 버스나 타고 정처 없이 가 보기)
7. 집에서 막춤 추기
8. 덕질하기
9. 낯선 취미, 스터디 모임에 나가기
10.... 내적 비명 지르기 (아악, 아악)



외로움 부스터와 함께 탐닉하기

직면하기와 비슷하지만, 탐닉하기는 거기서 한 발 더 내딛는다. 외로움에 더욱 잘 젖어들도록 부스터들을 취할 수도 있다. 부작용은 세지만 파괴 뒤에 재건할 기회가 생긴다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극단적인 자기 파괴로 건강을 해치거나,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가장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탐닉 부스터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바로 그것. 알코올이다. 술은 좋은 부스터다. 단당류 디저트와 비슷하지만 좀 더 자기 파괴적인 기운들을 북돋워 준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뇌는 일시적인 마비를 겪지만 외로움의 실체를 아주 잘 극대화해준다. '나 외로워 엉엉' 하고 울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울고 나면, 그동안 외로우면 안 돼 라고 스스로를 억압했던 자기 방어가 풀리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그래, 그러니까 외로움은 당연하고, 외로울 필요가 있고, 외로워서 취하고 울 수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현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방법이 옳다 그르다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알코올, 담배, 약물은 확실히 인류가 오랫동안 외로움, 공허함이라는 감정을 탐닉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 애용해 온 것들이다. 탐닉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디오니소스적 철학을 가진 나이기에 적당한 알코올을 즐긴다.

한편 나이 들수록 내 몸이라는 것도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걸 더욱 선명하게 느끼기에 이제부터라도 소중히, 살살, 좋은 연료를 넣어주려 한다. 인생 총량의 법칙처럼 알코올과 주취로 고생을 호되게 한 뒤에 내린 결론이다. 나라는 어리석은 인간은 결국 몸이 개고생을 해야 깨달음이 오는 타입. 그렇지 않은 현자들은 스킵해도 좋다.

최근에 와서야, 외로움에 대처하면서 다다른 결론은 뇌를 달래준다고 몸의 다른 조직들을 혹사하는 패착을 저지르지는 말자는 전향자의 고백.


외로움 탐구하기


다시, 외로움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많은 현자들의 외로움 극복 콘텐츠가 책으로, 동영상으로, 카드 뉴스로, 짤막한 피드로 존재한다. 그것들을 읽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은 재밌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고, 보고, 듣는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먼저다. 외로움은 실체가 없이 근원적인 존재 자체에 대한 외로움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대개는 누군가와 정서적, 육체적 교류를 나누고 싶다, 또는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그럴 때 직면, 외면, 탐닉은 좀 직절적으로 얘기하자면 싸게 먹히거나, 리스크를 헷징 하는 방식이다. 거절, 거부, 실패할 거라는 리스크를 사전에 미리 겁내고 주저하는 것이다. 위험요소를 회피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열 번의 외로움 중 한 번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해 보자고 말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들.


그렇다고 데이팅 앱에서 아무나 만나거나, 지난 인연에 질척거리고 싶진 않다. 외로움이 괴로움으로 변하는 대참사를 경험하게 될 테니까. 경험상 내 외로움을 해소하자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면 결국, 그의 외로움까지 떠안게 되는 '내 거 받고, 네 거 얹는' 대략 난감인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야, 야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쯤 되면 자아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스스로의 멱살을 잡게 된다. 아, 아니 그렇다고. 근데 너 배고프지 않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브런치 글질이잖아. 외로움을 탐구하다 보니, 밥 먹는 것도 잊었다. 자 이제, 생명 유지 매커너즘에 충실하게 밥을 맛있게 먹으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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