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라비를 만났다. 나의 전남편이자 오랜 친구. 탈혼 후 3년 만에 익숙한 동네의 낯선 카페에서. 많은 카페들이 사라지고 새로 들어서는 동네였다. 왈라비도 나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지만, 3년만큼 나이가 들었겠지만, 금세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뭐 마실래? 따뜻한 아메리카노. 산미 적은 쪽이지?"
처음 안부를 물으며, 한 번 보자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을 꺼내지? 했던 걱정은 기우. 막상 만나게 되니 말문이 술술 풀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가족들 근황은 어떠한지.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뒤이어 약속이 없었다면 더 길게 수다를 떨 판이었다. 동성친구만큼이나 익숙하고 편하고 더 말이 잘 통했다
내친김에 다음 약속을 잡았고 좀 더 편해진 우리는 예전처럼 같이 명절 쇼핑을 다녀왔다. 연휴는 길었고 코로나로 가족 방문도 하지 않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지난 명절엔
7년 동안 가족으로 지낸 왈라비와 나는 짧은 명절에는 양가 모두 방문하지 않았다. 둘 다 본가가 지방에 있었고 그것도 한반도 남쪽 저 아래 동네들이었다. 명절의 절반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가족 방문을 미루는 매우 좋은 구실이 되었다. 짧은 명절 연휴에는 '피곤한 직장인, 가엾은 자식 모드'를 발동, 전화로 인사를, 용돈이나 선물 보내기로 도리를 대신했다. 우리는 실용파였다. 각자 자기 일로 바빴던 일상, 명절은 가족 연례행사보다는 연휴로서 잘 쉬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다.
명절이면 여행을 가거나 명절 아침부터 대형 쇼핑센터를 방문하여 쇼핑을 하거나 동네 커피숍에 가서 나른하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처럼 커피를 홀짝였다. 왈라비와 헤어지고 몇 번의 명절을 맞이했다. 오리지널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지 이십여 년, 이제는 고향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 편하지만 않다. 내 집, 내 방, 내 침대. 모든 것이 나의 관할 아래 잘 구조화되고 질서가 잡힌 내 집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탈혼 후 첫 해는 가족에게 쪼르르 달려가 허전함을 달래려 했지만 내 기대와 다르게 가족들도 나도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했고 위로와 격려와 다음 인연을 위한 주선 등이 오고 가다가 급기야 서로 지치고 불편해진 채로 명절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 번째 명절부터는 집에 가지 않았다. 전화 인사와 용돈 도리로 대신했다.
혼자가 되어 맞이한 명절 다음 날
탈혼 후, 잠깐씩 소개를 받은 사람은 있었지만 딱히 연애나 재혼에 대한 니즈가 없어서 그 마저도 그만두고 혼자인 일상을 즐기며 지냈다. 그렇게 평일에도 혼자, 명절에도 혼자,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대체로 내 할 일을 하며 잘 지내는 편인데 반나절 정도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다. 음식을 차려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내가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면 참 좋을 거 같은. 그런 기대는 사실 접은 지 오래다. 뭐든 기대를 품으면 실망도 큰 법. 그냥 되는 만큼, 닿는 만큼의 인연이 좋다. 그렇다면 오늘, 명절 다음 날은 어떤 인연을 지어볼까?
전남편과 커플 동반 모임에 가다.
오늘은 쓸쓸한 명절 탈피 노하우 1호를 실행하자. 카카오톡 창을 열어 지인과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 건네기. 제일 먼저 오늘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의 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 오늘 호수 언니 생일이네."
언니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축하인사를 전했다. 바로 답 톡이 왔다. 언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집에 있는 고양이 루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했다. 루는 우리(나와 왈라비)와도 인연이 깊었다. 바로 8년 전 남편이 운영하던 커피숍 뒤편 하수구에서 구조한 냥이였던 것. 당시 우리는 새끼 고양이를 구조했지만 입양할 상황이 안 됐고,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던 호수 언니네로 입양을 보냈다. 그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라 믿고 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뒤로 호수 언니 커플과 자주 모임을 갖게 되었다. 취미 모임에도 같이 참여했고, 여행도 다녀왔다. 서로의 집도 가까워 언니가 여행 가면 우리가 루와 다른 고양이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그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약 5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하게 지내다, 얼마 안 가 우리가 탈혼 하고 언니네도 다른 동네로 멀리 이사를 가면서 약 3년 정도 카톡으로만 가끔 안부만 전하고 만나지 않았다.
"루가 많이 아팠어. 췌장암인 거 같다고. 얼마 안 남았대."
그리고 괜찮으면 집에 와서 루도 보고 같이 식사도 하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응했다. 그리고 내 근황도 전했다. 우리의 이혼은 언니도 이미 알고 있었고, 최근에 왈라비를 다시 만나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새로운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그러면 왈라비도 같이 와.
그렇게 해서 전남편과 같이 언니네 집 식사에 초대되었다. 나는 와인을 하나 샀고, 왈라비는 생일을 맞이한 언니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했다.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고 그러면서도 익숙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의 관심사 루가 있었다. 먼저 루의 근황을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탈혼 이전의 그 편안함과 익숙함 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거 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나와 왈라비가 서로에 대해서 표현할 때 친구로 거리를 잘 유지하고, 바디 터치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 언니네 집에서 넷이서 모이는 이러한 장면은 매우 익숙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역할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달라진 관계의 느낌이 좋다.
이렇게 예전 지인 집에 초대되어 가니, 즉 과거의 세팅 안에 들어가 보니 우리의 달라진 관계가 잘 보인다. 우리는 지금 친구보다는 가깝고, 부부보다는 멀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면서도 선을 지켰다. 가장 큰 변화는 각자 스스로를 잘 챙기고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는 것.
예전에 나는 왈라비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요구했다. 특히 운전할 때 왈라비를 조수석에 앉게 하고 이 것, 저 것 수발들기를 요청하곤 했다.
"음악 좀 틀어줘. 네비 좀 작동시켜 줘. 음료 좀. 물티슈 좀."
네비를 보면서도 '지금 여기서 들어가야 하나' 왈라비에게 물었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왈라비도 같이 그만큼 헌신하기를 요청했다. 내가 운전을 하는 건지, 왈라비가 운전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나만큼 해 줘.' 결혼은 상대에서 헌신을 기대하게 한다. 나뿐만 아니라 왈라비도 나에게 '헌신'을 기대하고 요청했다. 연애할 때 서로 무심하게 잘 챙겨 왔는데 결혼 후, 서로에게 요구하고 요청하는 '기대'와 '헌신'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우리는 남을 많이 의식하고 챙겨주는 만큼 상대에게도 그러기를 바라는 타입들이었다. 서로가 비슷했다. 상태가 좋을 때는 기꺼이 그 배려와 헌신을 즐겼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아직 우리가 모르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우리는 결혼 안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았고, 돌파하며 같이 사는 쪽 보다는, 각자 자기 길을 걷는 쪽을 선택했다.
친구가 된 이후로 나는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세팅하거나, 음악을 틀거나, 음료를 챙겨 마시는 것 등 모두 스스로 잘 알아서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하듯 왈라비 쪽 좌석이 불편하진 않은지, 차 안의 온습도는 적당한지, 어디에서 내려주면 좋을지 등등을 묻고 챙겨주었다. 그건 왈라비도 마찬가지.
부부일 때보다 서로를 덜 신경 쓰지만 필요한 만큼 배려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왈라비와 다시 부부가 될 생각은 없다. 연인도 마찬가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대하고 실망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볼 때, 우리는 지금 부부보다 멀고, 친구보다 가까운 딱 이만큼이 좋다.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지, 어떤 점을 필요로 할지 잘 알고 있는...
영화 결혼 이야기(2019, 노벨 바움백)의 마지막 즈음에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전남편 찰리의 끈 풀린 운동화를 묶어주며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