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떠나보낸 친구에게

반려교감

by 김솔솔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안 할게요.

사실 괜찮지 않을 거니까. 시간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도 안 할게요. 시간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니까.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내가 깊은 위로를 받았던 어떤 사람의 문자였다. 괜찮지 않을 거야, 쉽게 나아지지 않을 거야.라는 말이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너무 빨리 이 감정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가장 멀리, 가장 깊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있는 영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슬픔을 오래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무심해지도 않았다. 쓰라린 상처를 빨리 덮어버릴 다른 대안을 찾았고, 그것은 '슬픔의 유예'였다. 떠나버린 강아지와 닮은 아이를 입양했다.


"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루이를 만났어"
<중략>
두 번째 루이도 첫 번째 루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첫 번째 루이와 마찬가지로 희진을 돌보았고, 열매를 구해다 주었고, 다른 무리인들이나 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했다. 뿔 장신구를 걸어주었고, 희진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스펙트럼,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슬픔을 잠시 미뤄두었다.

일시적으로 이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 필요한 도움을 주자는 마음으로 임시보호를 청했다. 그렇게 온 '루이'는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처음에는 손님처럼 행동했다. 잠자리를 어지럽히지 않았고, 대소변을 정해진 곳에 보았고, 밥도 남김없이 먹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 곁에 와 칭얼대지 않았다. 대부분 구석 자리에서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잘 짖지도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도 이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호의를 베풀 뿐, 마음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인가를 지내고, 우리는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가장 명확한 계기는 임시 보호 중인 강아지가 아프고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친구는 심장병 2기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때 마침 일이 한가한 때라, 병원에 자주 데려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심장병은 퇴행성 질환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겼을 거라고 했다. 병들고 나이 많은 강아지가 입양 가기는 쉽지 않을 터. 몇 달간 손님처럼 조용히 지낸 녀석이 점점 안쓰러워 결국 내가 입양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놀랍게도 입양신청서를 접수하고 난 뒤로, '루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냈고, 가끔 먹을 것을 찾는다고 주방 서랍을 뒤져 집안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그리고는 '미안한 척' 연기를 했다. 내가 좀 오래 나무라는 거 같으면 하품을 하기도 했다. 기다렸다는 듯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목소리와 권리를 주장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편안했다. 그 당당함이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언젠가, 이때 한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날 올 것이다.



지인의 고양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 번 째 반려동물이었다.

'하리가 떠났어요. 갑자기 조용히. 하루 종일 잘 놀고 저녁도 잘 먹었거든요. 이해할 수가 없어'

말을 맺기도 전에 툭하고 맺힌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너무 큰 종은 음속이 느릴까? 너무 큰 슬픔은 쉽게 공명하지 못한다.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흔들고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슬픈 일이....... 당신의 슬픔에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르지 말고 해요. 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그 마음에. 그 슬픔에. 멀리 떠난 친구를 배웅하고 선 자리의 침묵에. 가만히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잠시 미뤄둔 나의 슬픔이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은 나도 조금 울었다. 멀리 여행을 떠난 내 친구를 생각하며.



2년 전에 친구가 한 말도 다시 생각났다.

'괜찮지 않을 거야. 시간은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우리는 물리적으로 그 시간을 건너뛸 수가 없어. 너무 힘들 땐, 네 강아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걸 생각해. 오랫동안 아팠잖아. 그 아픔이 이젠 끝난 거야. 평안히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나도 내 강아지가 떠난 뒤에 그 말이 가장 위로가 됐어. 생전 녀석의 마지막 생활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가장 납득이 되더라고.'

나와 친구의 반려 친구들은 운이 좋게도 천수를 누렸다. 모두 열여섯 해 이상 살았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세 이상이 아니었을까. 두 친구 모두 나이가 들며, 피하기 어려운 퇴행성 질병을 여러 개 앓고 있었다. 만성췌장염, 고혈압, 심장병 등. 이제 아프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과 같았다.

"지병으로 오래 앓으셨잖아요. 말년에 병상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셨어. 이젠 안 아파도 되잖아. 그 생각하면 난 차라리 마음의 위안이 돼요."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별은 끝이 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 털뭉치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죽음'을 나의 시선이 아니라 상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가고 있었다. 생로병사는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래도 가끔은 불쑥 불쑥 '나의 시선', '나의 욕망'이 끼어들었다. '~하고 싶은' 마음들. 그럴 때면 지금의 반려동물 친구에게 사랑을 쏟는다.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자. 어느 날이라도 이별은 다가온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별이 끝이 난다. 내가 멀리 여행을 떠나는 날. 남겨진 사람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그전까지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행복하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스펙트럼,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19, 허블


개는 어디서 꿈을 꾸는가, 안도현, 2003, 황금부엉이


나는 개다, 백희나, 2020,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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