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오랜 인연에 소홀하게 돼도 서운하지 않다. 예전엔 한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연락이 뜸해지고, 더이상 만나지 않게 되면 아쉽고 슬펐는데 언젠가부터 그렇지 않다고. 그 또한 그 나름대로 괜찮다. 친구란 다시 사귀면 되고, 인연은 그렇게 끊임없이 오가는 거라고.'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한 때, 우정을 나누었고, 자연스럽게 그 우정도 유통기한을 다해 소멸되면 만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모두와 십 년, 이 십 년 우정, 평생 우정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우정 때문에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는 후배에게 전하고 나 자신에게 가 닿은 말이었다. 한여름 그늘 없는 뙤약볕 아래 묶여 등이 발갛게 된 염소처럼 마음이 데어 가며 얻은 인생의 교훈 같은 것이었다.
십대, 이십대까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많이 기대고 기대하는. 다른 사람보다 날 더 생각해주기를,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생각해주기를, 내가 시간을 내는 만큼 친구도 기꺼이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주기를. 기대에 치인 우정이 마치 진짜 우정인 것처럼 착각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하니 누구보다 나 자신이 피곤했다. '넌 너무 열심이라 미안하게 만들어' 이 말에 머리가 흔들렸다. 당시엔 100도씨 물을 들이킨 것처럼 식도가 쪼그라든 듯 아팠는데 지금은 무척 고마운 한마디다. 우정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적정거리가 유지되는 관계, 흘러가도 되는 관계가 오히려 건강하다는 생각의 전환을 준 한 마디. 그 말은 망치 같은 말이었지만 부서지고 깨져서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한 말이기도 하다. 기대가 높은 우정은 무리하게 애쓰게 하고, 결국 서로를 피로하게 한다는 것. 고마운 일침을 날린 친구에게 나는 홀로 '망치'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어린 나무가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처럼 여리고 서툰 마음일수록 우정의 깊이와 지속성에 목 매인다. 교환일기를 쓰고, 우정반지를 하고, 서로의 대학 입학과 졸업을 축하하고, 친구의 취업에 내 일처럼 기뻐하던 때. 결혼할 때면 브라이덜 샤워나 결혼식 들러리를 서기도 하고. 순간순간이 담긴 사진들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 피드에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서로의 일상에 경쟁하듯 '좋아요'를 누른던 시절이 있었다. 앞선 세대들은 스냅사진을 인화하여 우정 앨범을 나눠가졌다고 하지. 어떤 때는 우정의 내용보다 형식이 앞서는 날도 있었다.
이십대가 끝나갈 즈음, '우리 우정 영원히 변치 말자' 다짐했던 친구들 중에는 결혼하기 전까지 술꾼 여자 도시 속 인물들처럼 자잘한 고민상담과 집안 대소사도 같이 챙겨주었던 친구도 있다. 친구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나는 결혼과 이혼을 거쳐 다시 혼자가 되면서 어느 순간 관심사도, 생활사도 달라져 만나면 겉도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자체에 불만은 없었다. 우리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다만 일 년에 한 번은 만나자 하면서도 시간 맞추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이 날은 이래서 어렵고, 저 날은 저래서 시간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꼭 만나서 근황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할 필요가 있을까.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게 인생사. 우리들은 어느 순간 서로를 어렵게 하는 약속 잡기를 그만두었다.
10월, 한바탕 찬비가 내리고 가을이 깊어졌다. 레이온 소재 머플러를 꺼내다 말고 캐시미어 머플러로 바꾸어 목에 두를 때, 이 맘 때가 생일인 '망치' 친구가 떠올랐다. 이럴 때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있어 편리하다. 편리함에 진심을 담아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라는 황금사과를 선물로 보낸다.
'잘 지내지? 이 즈음이면 '통속으로'에서 3,000CC 맥주잔을 들고 원샷을 외치던 무모했던 우리의 가을, 네 생일이 자동으로 떠올라. (망치야) 올해는 술 줄이고 건강하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메시지도 몇 자 적어 보낸다. 서로 붙어 다니며 울고 웃던 한여름 같았던 우정이 끝나고,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을 제 생긴 대로 살아내는 이 계절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