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by 김솔솔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

나는 너에게 끌린다. 너에게 자꾸 시선이 간다. 말 걸고 싶고 바라보게 된다. 너의 행동 하나, 말 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부정하지.

'아니 내 감정은 사랑은 아니야'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다. 그 떨림과 끌림이 무엇인지.

우리 뇌는 사랑에 빠지는데 10분까지 일 필요도 없다. 2초, 단 2초면 된다.

영화에서는 올리버가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을 엘리오가 2층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때다. 소설에서도 , 2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엘리오는 올버가 좋아질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아니, 그를 보기도 전에 이미 숙박 신청서 속 그의 사진을 보고 엘리오는 알았다. 그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하지만 그가 좋아질지도 모른다. 동그란 턱에서 동그란 발꿈치까지.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면 또 싫어할 터다. 몇 달 전 숙박 신청서에서 사진을 보자마자 놀랄 정도로 친밀감을 느낀 바로 그 남자를 말이다.
맴도는 시간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상대에 대한 끌림을 자각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확신하지 못하는 시간들. 이렇게 영화 밖에서, 소설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바보야 너는 왜 모르니!

내 인생의 지난 연애에서도 이 시간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미소 짓게 된다. 그때 그랬지. 처음에는 몰랐어.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의식하게 되더라고. 그때 그 애와 우연히 손이 스쳤을 때, 우린 둘 다 빠르게 손을 치웠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어색했는데 그래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는 않을 거야? 나 혼자 앞서가는 거야. 부정에 부정. 호의가 느껴지는 작은 제스처, 말 하나에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 되었다가, 무심한 한 마디 '나중에(LATER!)에 진흙탕으로 곤두박이치는 기분이 오고 가는 그 시간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란 말인가?

7월 말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곪아 터질 지경이 되었다

그 사람과 이어지게 된다면 이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될 터. 만약 서로의 마음이 엇갈려 이루어지지 못한 고백이라면, 잘 잊는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 것이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잊힐 때쯤 이불킥으로 기억을 풀썩이게 되겠지.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중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뒤에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묻는다.

"언제쯤 내 마음을 알아차렸어요?

'네 어깨를 꽉 쥐었는데 움찔했을 때'나 '네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에 네가 바지에 사정했을 때'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네가 얼굴을 붉혔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요?' 그가 여기 온 첫째 주 어느 날 아침 일찍 시 번역에 대해 얘기했을 때라고 했다.



깔끔하고 담백한 고백의 맛!

이 장면의 담백함이 좋다. 엘리오의 고백 장면인 셈인데, 올리버를 좋아한다는 표현은 없다. 다만 자기는 많은 것을 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른다고 말할 뿐. 올리버가 묻는다. 니가 뭘 모르는데? 엘리오가 답한다. 당신이 알았으면 하는 것! 당신 말고는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엘리오의 고백은 열풍으로 뜨거운 대지를 산뜻하게 식혀주는 바닷바람을 닮았다.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한테 끌려요', '당신과 사귀고 싶어요'라는 욕망의 내비침 없는 초깔끔한 고백의 맛! 그동안 엘리오는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뒤척이고 끄적였을지......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제목 그대로, 이 표현에 작가는 사랑의 이상을 담았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마치 나를 사랑하는 만큼의 사랑. 혹자는 동성애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꼭 동성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떤 형태의 사랑이든 아지경에 이른 사랑만큼 이상적인 것이 있을까. 내 것, 네 것, 내 마음의 크기, 네 마음의 크기를 묻고 따지지 않는 사랑.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 같은 궁극 애의 향연이라 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그저무해하고 아름답다.


이별은 이별이 아닐지 모른다.

영화와 책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엔딩에 대한 평만큼은 아껴두려 한다.


소설은 후속편이 있다. 제목은 <파인드 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펴낸 출판사 '잔'에서 번역(정지현), 출간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주요 인물 아버지 새뮤얼, 엘리오, 올리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꼭 <파인드 미>와 작가의 산문집 <알리바이>를 같이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파인드 미>에서는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이 부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와 15년이 흐른 후 엘리오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올리버가 마침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4개의 소제목으로 묶여 있는데 소제목은 음악적 요소를 띠고 있다. 새뮤얼의 이야기는 '템포', 엘리오 이야기는 ' 카덴차', 올리버는 '카프리치오', 마지막 장은 '다 카포'다. 음악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기막힌 제목의 의미를 알아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파인드 미>에 대한 본격 리뷰는 나중에 다시 쓰기로 하고. 단한 소감을 밝히자면 나는 올리버의 이야기 '카프리치오'가 가장 좋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끝까지 본 사람들은 올리버가 이 사랑에 어떤 비극을 선사했는지 알고 안타까워하는데 후에 올리버는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에게 멍이나 흉터를 남긴 사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있었습니다. 우리 가슴에 구멍을 뚫고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죠."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내가 상대의 가슴에 구멍을 뚫었지만 영영 치유되지 못한 건 나였어요." (258P)

넌 충실하지 못했다.
무엇에? 누구에게?
너 자신에게
(278p)

사랑을 등지고 떠났던 올리버는 누구보다 상처받고, 형벌처럼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냈다. 교수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 부인과 아이들이 그의 곁에 있었지만 그의 시간과 장소는 1981년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 그 소년에게 머물러 있었다. 아니스트로 성공한 엘리오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하며 그의 소식을 묻고 궁금해하지만 정작 그에게 가지 못하는 한 남자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파인드 미>를 보세요 ^^


첫사랑의 아련함과 무아지경을 마음껏 간접 체험하게 해 준 원작자 안드레 애치먼과 누구보다 엘리오 그 자체였던 티모시 살랴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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