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흰 백합을 원했지만 꽃 가게 여자가 백합은 아이들에게나, 엄격하게 따지자면 소녀들에게나 사용한다며 권하지 않았다.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이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쓴 작품이다. 작가는 어머니 장례식에 놓을 꽃을 사기 위해 꽃가게에 들어갔다. 백합꽃으로 장식하고 싶어 골랐지만 꽃가게 여자가 만류한다. 그건 소녀들에게 사용하는 꽃이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원하는 꽃을 올릴 수 없다. 죽은 자를 추억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애도의 자리에는 정해진 슬픔의 양식이 있다. 무엇을 위한 꽃이고, 누구를 위한 위로일까? 틀 안에 갇힌 채로는 한 사람의 내면 안에 웅크린 슬픔을 제대로 흘려보내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 흘러가던 강물이 막힌 것처럼 흘러야 할 슬픔이 막히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밝힌 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는 사적인 경험을 소설에 녹여 집필한다.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엮어 낸 소설을 '오토 픽션'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난 고백, 회고, 기록에 가까운 소설이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기 검열의 높고 단단한 벽을 뚫고 개인의 기억 속에 있었던 소외와 속박을 폭로한 용기 속에서도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일 수 있고, 나만의 기록이면서 모두의 일기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손발과 심장이 오그라든다고 생각하는 '나의 이야기'가, 높고 단단한 자기 검열의 벽을 뚫고, 수렁보다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은 '세월(LES ANNEES)'.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이 결혼생활이 자기의 원하는 삶인가 돌아본다. '장보기 목록, 세탁물 확인,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같은 코 앞에 닥친 미래를 위한 끝도 없는 준비에 시달리는 결혼생활, 혼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이혼을 결정한다. 혼자가 된 이후로는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글 쓰는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을 '나'라고 부르지 않고 '그녀'라고 지칭한다. 간단하게 정리된 한 여자의 연대기를 보면 '이거 내 얘긴데.', '나도 그런 욕망이 있어' 하고 독자들은 속삭인다. '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서로의 공감을 얻고, 응원할 수 있는 지점이 좋다. 겪어보지 못한 시대와 작가가 속한 프랑스 사회에 대한 식견 또한 넓힐 수 있다.
** 아니 에르노 소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렇듯, 그 이전에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듯,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자기 고백, 회고의 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설의 플롯(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이야기 구성 요소에 충실한 스토리 중심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생각의 덩어리 단위, 문장의 의미들을 곱씹어 보며 읽으면 내포된 의미를 다층적으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