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년째 이어오는 직딩의 취미생활

직딩 일상 로그

by 김솔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독하게 못 그렸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안타까워하실 정도로. 예체능계열에 진학할 학생도 아니고 내신점수를 너무 갉아먹지 않는 정도에서 간신히 실기 실습을 하던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 그림이 좋았다. 보는 것도 좋고, 그려보고 싶은 욕망에 늘 끌렸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인문계열 대학 입시 준비한다고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했고, 대학생활, 사회생활하는 동안에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바삐 쫒아다니고, 쫓기기도 하다 보니, 그림 그리기 욕망과도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직장에서 조금 여유가 있었던 날이었나,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날이었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갑자기 계시를 받은 것처럼, 네이버에서 '취미미술'을 검색했다. 너무 광범위하게 데이터가 잡혀서 회사 근처 취미미술로 지명을 넣어 검색을 했다. 이런 식의 검색어를 입력해서 첫 번째로 상단에 노출된 콘텐츠를 바로 클릭했다. 블로그 글이었는지, 카페글이었는지, 지식인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미산 화원. 나중에 미산은 고양이 이름이고, 그 미산이 일본 술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내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제가 그림을 정말 못 그려요. 그런데 절실하게 그리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했더니, 깔깔깔 유쾌한 웃음소리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림 실력은 전혀 상관없어요. 유화 그리기 어렵지 않으니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유화라서 다행이다.

유화는 장점이 명확하다. 여러 색을 섞는다고 해서 탁해지지 않는다. 색과 색을 섞어서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다. 덧발라도 그림이 탁해지지 않는다. 수채화와 비교했을 때 수정이 쉽다. 스케치도 중요하지만 채색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등학교 미술시간 실기 정도의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유화는 왠지 고급 취미처럼 느껴져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수채화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더 유리했고, 미산 화원의 레슨 방식이 직장인 취미미술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잘 짜여 있어서 선생님 말대로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처음에는 선 하나 그리기도 어려웠다. 선 그리는 것이 상품개발 기획안 한 장 작성하는 것보다 어려울 지경이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손목부터 어깨, 뒷목까지 뻣뻣하게 굳어서 내 몸은 누가 툭치면 파스스 부서지고 말 인센스 스틱 같았다. 스트레스 해소하러 왔다가 스트레스만 왕창 얻어가는 기분이야. 눈조차 깜빡거리지 못하고 집중한 2시간. 눈이 시뻘개진 채로 화원을 나설 때 선생님이 명랑하고 쾌활하게 큰 소리로 칭찬을 해 주셨다.

'톰슨가젤님 엄청 잘하고 계세요. 처음인데 이 정도 한 거면 진짜 잘하시는 거예요. 조금만 긴장을 풀고, 다음 시간에도 이어가 볼게요'

감동, 분명 삐뚤빼뚤 엉망진창인 스케치인데 그 칭찬에 마법처럼 자신감이 생겼던가. 물론 난 현실 파악, 주제 파악은 하는 인간이라 쉽게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내 어설픈 스케치를 선생님이 리터칭을 해서 바로 잡아주고 채색에 들어갈 때 만족감과 자신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직장인 취미 맞춤형 컨텐츠와 수업진도

앙'입시미술이 아니고 취미미술이니 평소에 좋아하는 유명작가의 그림을 따라그리거나,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 그리는 위주로 할 꺼에요.'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천천히 익혀나가는 걸로 할게요. 이번 시간에는 제가 리터칭 하여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부터 밑칠 들어갈 거예요'


이 곳에서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따라그리는 것으로 그림에 익숙해지고, 개인의 니즈와 실력에 따라 창작 작품도 가능하다.


선생님은 화원을 찾은 나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전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그림을 일정 기간 내에 완성하는 것! 원하는 것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일상 속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것!


취미의 가치

사회생활하다 보면 내 것 아닌 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에 영혼을 받쳐야 하는 순간이 많다. 영혼을 탈탈 털어 뭔가를 했는데 남는 건 없고, 이 연차되도록, 이 나이 되도록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지? 의구심과 회의가 밀려올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동안 내가 이룬 것을 봐! 지난 한 해 동안 그림을 꾸준히 그렸어. 그리고 집 안 분위기를 바꿨지.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했지.' 하고 작은 의미를 남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지금도 첫 번째 완성작의 감동이 생생하다. 오키프의 꽃 중에 하나였는데, 처음으로 비유를 배우고, 밑칠과 세부묘사, 그라데이션 기법들을 배우던 순간을.


올해의 첫 그림은 나의 반려동물 그리기!

두 번째 반려동물, 무무의 순간이다. 요거트 앞에서 정신을 잃고 달려드는 강아지의 순수한 식탐의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스케치한 것이다. 채색을 더하면 어떨 그림이 될지,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두번째 반려동물 친구 그리기_강아지 요거트를 향해 달려드는 중



그동안 그려 온 그림들
david hockney
좌_앙리 루소 오마주 일러스트 /우_톰슨가젤, 나의 반려동물
donuts_Danese Co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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