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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미장원 Mar 03. 2024

이태원

이상과 현실

한국사람 반, 외국인 반. 이태원 거리는 걷기만 해도 여행 온 느낌이다. 각자의 언어로 호객 중인 여러 식당들과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낯선 모스크. 밤이 될 수록 술과 사람과 흥은 점점 더 높아진다. 저장해둔 곳은 많지만, 낯선 기분에 왠지 자주 가지 않게 되는 동네이다.


두번째 장소는 사장 한 명이 운영하는 전통주 바이다. 혼자서 어떻게 브랜딩하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참고가 많이 될 것 같아 가보기로 했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올라갔다. 북적거리는 이태원 메인거리에서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점점 가로등도 줄어들고 어둑해진다. 이따금 지나가는 외국인에 괜히 움츠러든다.


창업을 결심하면 나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걸 내 삶 안에서 마주하게 된다. 망상에 가까운 희망사항은 매월 내야하는 임대료와 높은 보증금의 문턱에서 힘이 빠진다. 그래서 처음엔 작게 저렴한 곳에서 시작한다. 오늘 방문할 이 곳 역시 비용과 이상의 합의점을 찾아 다소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주변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내부는 꽤 분위기 있었다. 간접등으로 은은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전통주들이 위스키처럼 진열되어 있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유리창 앞 자리에 낯익은 남자의 뒷 모습이 보인다.


일찍왔네요. 골랐어요?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달지 않고 향이 좋은? ... 이거요.


천비향다. 누룩과 쌀을 이용해 발효한 후 장기 저온숙성으로 만드는 약주이다. 와인에는 없는 누룩 특유의 향과 은은한 단맛이 상당히 매력적인 술이다. 감미료 맛이 톡 튀는 탁주를 즐기지 않아 전통주를 즐겨찾지않던 나의 선입견을 깨준 이기도 하다.


전통주가 왜 덜 유명한지 알아요?

글쎄요.

단맛 때문이래요. 한국에선 달고 톡 쏴야 더 잘팔리는데, 뭔가를 넣어서 만드는 맛은 한계가 있어요. 시간이 만든 향과 맛, 질리지 않는 맛이어야 하나봐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육회와 고추장찌개가 나왔다. 맛있다고 소문난 고추장찌개가 어떤 맛일지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매콤하고 칼칼하고 진듯한 맛. 집에서도 잘 안해먹게되는 고추장찌개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소문대로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직접 하시는거죠?

제가 거의 다 해요. 레시피가 있는데 이상하게 직원하면 이 맛이 안 나온대요. 손님들이.


참기름과 고춧가루 두 스푼씩을 볶다가 돼지고기 볶기. 그 위에 감자, 양파, 애호박, 청양고추, 파를 볶고 고춧가루 또 한 스푼, 물, 간장, 설탕, 갖은 야채과 두부. 요리의 순서와 재료를 모두 지켜도 맛이 차이가나는 건 왜일까? 그릇을 위한 진심의 차이일지 모른다.


근데 왜 와인 가게에요?

그냥, 와인을 좋아해요.

생각하는 건 어떤 가게인데요?

아직요. 어떻게해야 더 지속가능할까 고민중이에요. 여기 사장님도 전통주를 좋아해서 직장 그만두고 차리셨다잖아요. 그 용기가 너무 멋진데 전 안 그러려구요. 겁이 많거든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게 생계가 되는 건 원하지 않아요. 안 팔려서 창고에 와인이 왕창 쌓이면 가슴 아프겠지만, 마실 와인이 많아져서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긍정적인 사장이네요.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창업한 친구가 있어요. 2년정도 카페를 열심히 운영하다 올해 접었어요. 이젠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대.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어요. 

낭만적인 이유네요.

아직 오픈 전인데, 무슨 소릴 못 하겠어요.


천비향의 단맛은 묘하다. 강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감기는 맛. 한잔을 담아 유리창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술잔 너머 이태원의 저녁 불빛이 비쳐보인다.


이 가게는 계속 이 자리에 있으면 좋겠네요. 다음엔 택시타고 와야겠어요.

차로 와도 될 것 같은데요.

으음, 주차할 데가 없어요.

그래요. 택시타고.. 같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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