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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미장원 Feb 25. 2024

홍대

어떤 시작

나에게 홍대는 미지의 세계의 출입문 같은 곳이다. 금요일 밤이 되면 2호선 홍대역 KFC앞에 술과 춤과 음악을 쫓아 젊은이들이 불나방처럼 모였다. 나이트가 한물 간 유행이라면, 클럽은 신문물이었다. 왼쪽 팔에 클럽데이 팔찌 하나만 차면 이 동네 클럽을 어디나 다 들어가 볼  있었다. 첫차시간까지 놀아도 신나고 즐거웠다.


서른이 넘은 후 부턴 홍대 근처는 거의 가지 않았다. 쿵쿵 울리는 비트가 카타르시스보다는 피곤함을, 시끄러운 술집의 소음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홍대에서 한남으로, 강남에서 청담으로. 조금 더 비싸도 더 한적한 곳으로 자연스레 이동했다. 조용한 곳에서 와인이나 위스키나 한 잔 하는 게 마음 편하다. 나이듦의 증거일까?


뒹굴거리며 SNL 그 시절 쇼츠를 보다가, 문득 엄마의 소위 노는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다음 세대는 우리의 노는 시절을 기록물로 유추할까?




첫번째 시장조사지는 연남동에 핫한 와인샵이다. 요즘은 이곳을 홍대보다는 연남으로 더 많이 부른다. 와인샵 이름은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산지 이름었는데, 와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이 샵을 찾아낸 민 대리 역시 대화 중에 가게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가게는 25평 정도였다. 흰 진열장과 원목 테이블과 유리. 단순한 인테리어이지만 벽을 가득 메운 와인병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는 곳이었다. 선반에 와인을 종류별로 놓고 조명만 잘 쏘아도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샵이다보니 와인은 저렴하지 않았다. 연남동 스타일에 맞게 인스타 각이 나오는 예쁜 디자인을 가진 상품이 많이 눈에 띈다. 연필로 사각사각 쓴 것 같은 듯, 라벨이 힙해보이는 그려진 와인을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았다.


주변 인테리어와 와인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이, 그는 그저 신기한 듯 와인의 라벨을 읽고, 서빙된 와인의 냄새를 맡아보며 두리번 거렸다. 마치 오랜 만에 산책나온 강아지처럼.


와인은 잘 안 마시죠?

거의 몰라요.

여긴 어떻게 찾은 거에요.

검색은 잘해요.


와인을 1도 모르는 사람과 와인샵 시장조사라니. 신기한 상황이다. 이곳은 구매한 와인을 소정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바로 마실 수 있다. 안주는 대체로 조리가 간단한 것으로 구성되어있지만, 꽃처럼 깎아 만드는 테트 드 무안 로젯 치즈를 대표 메뉴로 내놓으며 또 하나의 인스타샷을 놓지지 않는 영민함이 있다.


와인을 받을 때는 이렇게 잔 밑에 손만 살짝. 첨잔은 상대방이 잔을 다 비우기 전에.

그럼 누가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가 없네요.

맞아요. 누군가 빨리 마시면 많이 먹게 되겠죠.

천천히 색을 먼저 보고, 향을 맡아보고, 마시면서 질감을 느껴보는 거에요.

어렵네요.

그냥 내 입에 맛있으면 맛있는 거에요.

이 건 맛있네요. 이런 지식도 알면 좋은 거겠죠?

여자 만날 때 유용할 거에요.


MBTI, E성향이 충만한 직원에게 와인이 처음인 민 대리의 눈 높이에 맞춰 설명해달라고 하니 쉽고 재미있게 와인 이야기를 해 주셨다. 덕분에 평일과 사뭇 다른 주말 시장조사가 어색해지지 않아 다행이다.


지금 드시는 와인 라벨엔 이렇게 적혀있어요. 이 와인은 내 친구들과 대학교에서 만들었어. 프랑스 와인은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우리만의 풀바디 레드 블렌드 와인이야. 늦은밤 방탕하게 여자들과 마시기 좋고. 혹시 우리 와인이 더 필요하면 내게 전화해 줘.


입 안에 한 껏 섹슈얼초콜릿 머금었다. 라벨 속 와인메이커가 말 한대로 쉬라의 풀바디감과 진판델 과실향의 잔담감이 진하게 올라왔다. 직원은 본인이 해외에서 공수했다던 희귀 와인까지 꺼내 보여주며 와인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와인 이야기도 재미있네요.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맛도 다 다르구요.

호기심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런 편인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 저것 공부하고 찾나봐요.

근데 흥미도 금방 떨어져요. 결국 성공은 그게 핵심인 거 같아요. 사람도 일도 꾸준히 좋아하는 거. 그래야 뭐가 되더라구요.

굳이 전부 다 성공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그런 반짝 핫플이려니 생각하다 직접 와보고 많은 생각과 메모를 다. 마개를 열어둔 와인의 맛과 향은 조금 풍부해졌다. 남은 와인은 오크향과 바닐라향이 어우러져 좋은 마무리감을 뽐냈다.


회원 등록하시겠어요? 문자로 이벤트 정보도 드리고, 적립도 해드려요.

네, 해 주세요.

저도요.

가입하게요?

이제부터 알아가려구요.


가게를 나오자마자 발송되는 가입 감사 메시지. 작은 가게이지만 한 번 온 손님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가게를 열겠다는 무모한 여정의 처음엔 할 수 있을까? 의문문이었다.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함으로 바뀌고 있다. 첫번째 시장조사는 목적에 충실했고 알찼다.


참고할 만한 인사이트와 맛있는 와인,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다시 알게 된 사람까지.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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