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에 대한 기억은 밍밍함이다. 소란스러운 꼬치 전문점에서 나오는 그저 그런 술. 얼마 후, 윤기 흐르는 가지구이, 가운데 큰 무가 담긴 정갈한 어묵탕과 그가 주문한 20만 원짜리 사케가 나왔다. 센킨 잇세이. 맛은 보장합니다. 사장님의 표정이 자신만만해 보였다.
입술로 차가운 질감이 닿았고 이내 배꽃향이 풍부하게 감돌았다. 목 넘김은 그 어떤 화이트 와인보다 부드러웠다. 맛있다! 싸구려 사케 몇 잔을 먹어보고 사케를 정의하려고 했던 걸 반성하게 만드는 맛이다. 덧붙여진 사장님의 사케 이야기.
사케도 알 수록 재밌는 술이에요.
좋은 술과 자영업자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더 즐거운 시간. 어느새 어묵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고, 사케 한 병을 다 비웠다. 자리를 일어나며 민 대리는 5만 원짜리 여러 장 꺼내어 계산을 했다.
현금이네? 사장님, 앞으로 더 대박 나십시오.
고마워. 다음에 또 같이 오세요.
네, 또 올게요. 잘 먹고 가요.
집에는 어떻게 가세요? 바로 앞에 버스가 있더라고요.
전 대리기사님 오려면 좀 더 걸려서 정류장까지 같이 가요.
시끌벅적한 길목을 지나면 금세 고요해진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여러 번 봤던 얼굴인데, 어딘지 낯설다. 살짝 웨이브진 머리카락과 옆얼굴이 가로등 불에 비쳐 보인다.
현금을 가지고 다녀요?
아뇨. 저도 처음 오는 거라 축하도 할 겸, 올 때 뽑았어요.
왜요?
카드는 수수료 나가니까. 어! 저기 530번. 조심히 가요.
버스 안에 올라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든다. 직장 동료 사이에 손인사라니.. 아주 큰 키는 아니지만, 긴 코트가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불과 몇 달 전, 옆 팀에 이직해서 온 그의 첫 느낌은 귀찮음이었다. 수많은 질문을 하고 방금 누가 얘기해 준 것 같은 걸 또 물어봤다. 방대한 그의 질문은 가끔 나한테까지 넘어왔다. 그저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짧은 언덕길, 톡으로 몇 개의 링크가 전송된다. 와인샵, 전통주 바, 와인바, 위스키 바...
다음엔 시장조사 같이 가요.
잘 모르는 건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되는 것 같다. 배꽃향 사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