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인미장원 Feb 11. 2024

용산

아는 사이

계속 같은 장소를 가처음의 설렘은 사라진다. 평일엔 유니폼처럼 되어 버린 패딩과 같은 색으로 여러 개 구매한 정장바지에 튀지 않는 색의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눈 화장은 자주 건너뛰었고, 어떤 날은 옆구리에 보풀이 살짝 난 카디건을 버릴까 고민하다 그냥 걸치고 갔던 적도 많다. 사실 평일의 나의 매무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토요일 낮 3시. 약속시간을 3시간 앞두고 분주하게 준비를 하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보던 사람과 만나는 자리인데.. 치마를 집어 들었다가 청바지로 바꿔 었다. 스타킹 신을 정성까진 필요 없을 것 같다. 새로 산 하늘색 니트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는 용산역에서 멀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어둑해지는 길을 조금 지나니 데이트 나온 커플들이 북적이는 거리가 나온다. 여기가 용리단길이구나. 수년 전 왔던 용산에 대한 기억은 커다란 쇼핑몰과 삭막한 전자상가가 전부였다. 지금은 눈길을 사로잡는 아모레 사옥을 등지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가게는 보내줬던 사진 그대로였다. 가로 폭이 사람 걸음으로 세 걸음정도 나오는 작고 모던한 일본 스타일 선술집.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나무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다. 나무 결이 느껴지는 바와 미색 벽, 노란 불빛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어서 오세요! 하얀 두건을 두른 마른 체구의 남자가 활기찬 목소리로 반긴다. 어떤 가게를 가도 그 가게 주인인지 아닌지는 맞이인사만 들어도  수 있다. 주인은 바에 앉은 남자와 친분이 있는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대리의 뒷모습. 세미 정장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아이보리색 니트걸친 그가 조금 낯설다.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옆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시간약속이 칼이네요. 

언제 왔어요?

얼마 안 어요. 뭐 먹을래요?

여긴 시그니처가 뭐예요?

어묵이랑 가지래요.

그럼 그걸로 해요.

술은? 참고로 여긴 와인은 없어요.

다른 것도 괜찮아요.

사케 어때요?

좋죠. 근데 전 사케는 잘 몰라요. 

잘 모를 때는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거로 마시면 . 사장님!


작은 가게에 20만 원이 넘는 사케라니. 그걸 주문하는 게 아니라고 붙잡으려다, 주문받은 사장의 뒷모습이 신나 보여서 바꾸겠다는 말을 못 했다. 아마 가게 오픈하고 손님에게 나가는 첫 번째 재고일 것이다.


준비하고 있죠?

어떤 거요?

와인샵? , 생각은 하고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그래 보여요. 저도 이런 쪽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 오자고 한 거예요?

그래서 온 거잖아요?


그의 말이 맞다. 요즘 나의 관심은 창업이다. 다른 가게 사장님의 강의를 다니고 동네 부동산에 나온 매물을 보러 다녔다. 회사엔 비밀로 고 스파이처럼 은밀히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형이 조언 좀 해줘요. 예비 창업자한테.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전의 회사 동기에요. 합숙 교육 같이 받으면서 좀 친해졌어요. 지금은 는 이직하고, 저는 회사를 나가고. 여긴 혼자 하는 건 아니에요. 엄마, 누나까지 셋이서 해요. 오픈은 저녁 6시이지만 준비는 12시부터,  정리하고 가면 새벽 2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첫 창업이라는 생각이 안 들만큼 센스가 묻어나는 가게였다. 여러 해 동안 준비한 누나의 솜씨로 가게의 분위기와 메뉴를 갖추고, 그의 활기찬 영업력으로 꾸려가고 있었다. 야채와 각종 재료를 받아 손질하고 육수를 끓이는 것부터, 일하는 시간은 회사보다 더 길지만 여기가 좋다고 한다. 지인이 아니면 기 어려운 가게의 , 비용, 수익까지 그가 겪은 많은 것을 압축적으로 었다.


쉽진 않은데, 내가 한 만큼 버는 재미 있어요.


한 만큼 번다.. 이게 핵심인 걸까?



이전 05화 한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