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에피소드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1-2교시 끝나고 빨리 도시락을 먹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4교시가 끝나야 점심시간이기에 어리둥절했지만 우리는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고 한 시간 정도 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 주변 지대에 물이 차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안양천 옆쪽, 지대가 낮은 개봉동과 광명동에 살았기에 홍수가 나는 상황을 목격한 적은 있었지만 가족과 떨어진 학교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들께서는 개봉동, 광명동 사는 친구들은 일대가 잠기고 있으니 빨리 하교를 하라고 했다. 친구들과 급히 나와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이미 그쪽으로는 물이 다 차서 버스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고 친구들과 급히 걸어가는데 큰길에서 골목 안쪽으로 보이는 개봉역 큰 간판 밑으로는 이미 잠겨있었다. 개봉사거리 고가를 넘어가는데 발서부터 물이 차 올랐고 친구들과 나는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은 가슴까지 차 올랐고 살아서 집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품고 열심히 걸어갔다. 물속에서 걷는 건 쉽지 않았고 게다가 물이 너무 냄새나고 더러웠다. 더 일찍 보내주지 않은 학교에 대한 원망이 들었고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라는 공포감까지 느꼈다. 개봉동에서 광명으로 연결되는 다리까지 2시간이 넘게 물속에서 헤매다 도착했다. 경찰차, 응급차, 대형버스가 나와 있었고 물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버스로 안내한 후 담요로 덮어주고 따뜻한 물도 주고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집은 그때 광명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가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광명은 상황이 더 심각하기 때문에 갈 수 없으니 임시로 마련된 수재민 숙소로 가라고 했다. 다행히 근처 개봉동에 친구 집이 있었고 친구 부모님께서 우리를 거둬주셨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해야 했기에 집에 전화를 드렸는데 맙소사! 집에 물이 차서 부모님 두 분 다 정신없으셨고 살아있으면 됐으니 내일 조심해서 오라고 하셨다. 갑자기 주어진 상황이었지만 중등 소녀들은 재미있게 놀았고 다음날은 수재민 임시숙소에 가서 챙겨주시는 간식도 먹었다. 오후에 물이 다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집에 갔더니 물이 휩쓸고 지나간 초토화된 우리 집이 쓸쓸히 반겨주었다. 생각해보니 더 어린 시절 개봉동 살 때 홍수를 처음 겪었다. 자고 있는데 새벽에 엄마가 "물 들어오니까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셨고 오빠와 나는 급히 이불과 중요한 물건들만 챙겨서 2층 주인집으로 대피했다.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오빠와 나는 2층에서 창문으로 내려다보며 떠다니는 물건들 구경하고 상황을 즐겼다. 부모님께서는 집이 잠겨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텐데 말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꿈이 산산조각 나는 좌절을 경험했다. 나의 꿈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나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피아노 치는 언니가 너무 부러웠다. 그 언니가 피아노를 칠 때면 나는 어깨너머로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익혔다. 그리고 언니가 일어나면 눈으로 익혔던걸 직접 쳐 봤다. 물론 손가락 번호도 다 틀리고 서툴렀지만 제법 비슷하게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난다. 다들 나에게 피아노에 소질 있다고 했다. 부모님께서도 내가 피아노를 쳤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셨으나 정작 학원은 보내주지 않으셨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학원비가 부담이셨던 거다. 엄마는 "늦게 배울수록 빨리 배운다더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근본적 문제는 돈이었다. 6학년 생일에 처음으로 학원에 보내주셨고 나는 한 달 만에 바이엘을 마스터하고 체르니에 들어갔고 선생님들과 부모님도 깜짝 놀랄만한 초스피드 진도였다. 너무너무 배우고 싶던 피아노를 배우니 열정이 폭발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원에서 이례적인 케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빠른 속도로 진도는 팍팍 나갔고 중학교 3학년 때 피아노 선생님께서 예고에 들어가려면 입시 레슨을 받아야 한다며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들뜬 마음에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오빠 대학에 보내야 하니 피아노는 이제 그만 배우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지금도 난 인생 최대의 좌절을 맛본 그날의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히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한 학년이 23반까지 있었다. 고2 때 일과 중에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가방을 싸라고 하셨다. 집에 갈 시간도 아니었기에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선생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우린 조용히 가방을 쌌다. 우리 학교는 원래 주간, 야간반이 있었고 다 합쳐서 23반이었던 건데 교실의 여유가 있었던 건지 입학은 주, 야간으로 했지만 수업은 모두 주간에 했다. 근데 난데없이 학교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서 다시 반을 나눠서 주간, 야간에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시고 울먹울먹 소식을 전했다. 원래는 주, 야간 모두 다 섞여서 반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각자에게 새로운 반을 알려주셨고 즉시 그 반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같은 반 안에서도 주, 야간이 나뉘는 기현상이 발생했고 친구들끼리 주간인지 야간인지 몰랐었는데 강제로 다 까발려진 상황이 되었다. 새로 바뀐 반으로 가라고 하니까 다들 엉엉 울면서 이동을 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우리는 모두 뛰쳐나와서 학교의 납득할 수 없는 행정에 맞서서 투쟁했다. 도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지만 강력하게 버티는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던 학교 측은 하루 만에 모두 결정을 취소시켰고 다시 원래반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싶었던 입학 때의 선택은 어이없게 만천하게 공개되었고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 상처만 너덜너덜 남은 사건이다.
학창 시절 나는 성실하게 할 일은 잘했지만 참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고2 때 합창대회를 준비하는데 1학년 가창 시험 때 만점을 받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나를 지휘로 추천했다. 앞에 나서는 건 소심했던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친구들이 나의 그런 사정을 알아줄 리 없었다. 마침 짝이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여서 반주자로 추천받았는데 활발했던 친구였기에 내가 반주를 할 테니 제발 바꿔달라고 사정사정했다. 내가 불쌍했는지 짝꿍이 바꿔주었고 결국 난 우리 반 대표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예고를 포기했던 좌절감 때문에 꽁꽁 숨겨두었던 피아노 실력을 전교생 앞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합창곡은 '춤추는 춘향이'였는데 무척이나 어려운 곡이었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엄청나게 연습을 했다. 합창대회는 체육관이었던 강당에서 했는데 웅장하고 어려운 반주였기에 전교생에게 주목받게 됐고 그날 우리 반은 당당히 1등을 했다. 그전까지 존재감 1도 없었던 나였는데 '날으는 피아노'라는 별명이 생기며 전교생이 알게 되었다. 여고를 다닌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여자들 중에서 인기 많은 사람이 꼭 있는데 '날으는 피아노' 덕분에 잠시 그 주인공이 되어보았다. 편지와 선물도 많이 받았고 복도를 지나가면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모습도 살짝 즐겼다. 잠시였지만 피아노 잘 치는 학생으로 인정받은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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