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시간 어땠는지, 긍정적이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일단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부정적이고 행복하지 않은 기억들이 오히려 먼저 떠올라서 좀 지치고 힘들었다.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던 건 후자의 이유가 더 크다. 그 누구에게도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꺼내서 알아주고 공감해 주고 손 내밀어주고 안아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겐 감정이 존재하는데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괴롭히곤 한다. 나만 괴롭히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때 내 주변에 누군가 있다면 타깃이 되어 뒤집어쓰기 일쑤다. 인정하기 괴롭지만 엄마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사랑하는 내 아이나 가족에게 화풀이하기'지 않은가?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 존재이다. 아무리 화를 내도 엄마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잘못한 것 이상으로 화를 내는 엄마에게 반박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며 아이 스스로 그 상황을 마무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아이들의 반응을 절대적 존재인 엄마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안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을 때 그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심술을 부린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지만 내 안의 아이를 돌아보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초등학교 아니 나는 솔직히 국민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국민학교라고 하겠다. 나의 국민학교 때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 정말 약하고 찌질한 모습이지만 소개해 본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서 마음이 아픈, 그래서 가슴 한 켠에 숨겨둔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 정미라는 친구가 나한테 어떤 실수를 했던 모양이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 보니 엄청난 사건은 아닌듯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정미는 나한테 사과를 했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그날 집에 가서 편지를 썼고 다음날 나에게 전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도대체 이해되지 않지만 편지를 받고도 친구를 용서해주지 않았다. 졸업식날 정미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끝끝내 '이제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사건은 계속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안경 너머로 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괜찮다는 말 한마디 그게 뭐라고 나는 해주지 못했을까...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세월이 흘러 20대 때 아이엠스쿨이 유행하던 시절 홈페이지 가입 후 제일 먼저 정미를 찾아보았지만 그 유행이 다 끝나도록 나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어떤 경우라도 적을 두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친구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정말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분명 별것도 아닌 작은 일이었을 것이다. 실은 그 친구는 이 사건을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다. 당시 바로 해결하지 못했던 이 작은 사건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결혼 후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과정에서 다시금 떠올랐다. 어떤 계기로라도 꼭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찌질한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난 없었던 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약한 나' 나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런 에피소드들이 쏟아졌다. 어이없는 일도 많고, 억울한 일, 화났던 일,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 등을 적으며 그때의 나로 다시금 돌아가서 생각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한가? 나부터 나의 감정을 알아주었을 때 신기하게도 '치유'라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다. 그저 꾸꾹 눌러서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 놓는 걸로 끝내면 안 되는 거였다. 주인도 없이 길도 없이 짓눌렸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심술부리기 전에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자. 너무나 초라하고 약하고 찌질해도 그것도 나의 일부분임을 인정할 때 순한 양이 되어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나'를 공부한다는 것! 쉬운 시간만은 아니다.
나 공부를 하면서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문장을 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나의 하루를 돌아봤을 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얼마나 있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는 질문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누군가의 누구라는 타이틀에 갇혀 소중한 나의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 속에 내가 없는 건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내면의 아이의 감정을 잘 헤아려 주었다면 이제 매일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이라는 손님을 잘 만나보자. 시간 없고 바쁘다고, 이쯤은 참을 수 있다고 또 한켠에 처박아두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만나보자. 공감하고 인정하면서 잘 다룬다면 감정 때문에 실망스러운 내 모습에 자책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